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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Sep 01. 2020

끝이 보이지 않는 시작

난 그렇게 잠이 많지도 않은 사람이다. 

다만 11시쯤 잠들고 5시쯤 일어나는 수면 습관 15년 차로, 밤을 새워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수험생 시절, 공부하기 싫어 미뤄 둔 <윤리와 사상> 교과서를 보겠다며 3시에 일어났다가 4시에 다시 잠들어버렸던 시험기간이 기억난다. 이 한 과목이 발목을 잡을 게 분명한데도 잠을 택하는 몸뚱어리였다.  


대학 때에도 잠버릇은 여전했다. MT를 가서도 11시면 구석에 처박혀 잠들고, 야식을 시켜 먹으며 밤을 새우는 것이 로망인 도서관에서는 야식만 먹고 잠을 잤다. 


직장에 다니면서는 일이 많아 새벽에 퇴근하는 날들이 있었는데(퇴근을 못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의 시기였다), 후유증으로 주말에 시체처럼 누워 잠만 잤다. 아마 주말이 없었다면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다. 


배경 설명이 길었는데, 암튼 이런 나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닥쳤다. 


사랑스러운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아기란 낳고 보니 정말 너무 신비하고 신기한 존재이라, 감성과 담을 쌓고 지내는 내가 아기의 솜털이 가지런히 누워 있는 모양만 봐도 마음이 뭉클해졌다. 


어여쁜 생명체는 15년 묵은 수면습관을 버릴 것을 요구했다. 밤에도 3시간마다 일어나 1시간 정도 먹고, 쪽잠을 자고 있을라 치면 다시 '찹찹' 입맛을 다시며 나를 깨우는 아기. 신생아가 목을 못 가누는 게 아니라 졸음에 미친 내 목이 뒤로 젖혀졌다, 앞으로 숙여졌다를 반복했다. 


컨디션 난조로 소양증까지 재발하고. 


문제는 우리가 24시간 함께한 지 겨우 며칠 차라는 것이다. 어젯밤엔 이걸 언제까지 인내하면 될까, 끝이 보이지 않는 시작점에 들어선 것 같은 생각에 아득해졌다. 


이 세상의 수많은 부모들이 이 과정을 거치고 있을 텐데 내가 엄살인 건가 싶기도 하다. 누구는 두 명 째, 누구는 쌍둥이를 이렇게 키우고도 또 다른 생명을 기다린다니.


한 선배가 인생의 문은 열고 닫음으로써 끝나는 게 아니라, 열면 다른 문들이 끝없이 기다리고 있어 열고 또 열어야 하는 것이라 했던 얘기가 기억난다. 


다시 한 치 앞만 보며 다음 문까지 가야 하는 시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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