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리별 Oct 18. 2023

은행원의 퇴근일지 5. 익명에 기대어

익명의 단톡방에

누군가 귀농을 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그 밑으로 달린

공감어린 대꾸들을 보며


치열함에 지쳐 있는 건

나 뿐만이 아니란 것을 느꼈다.


고등학교 3년 대학 5년 직장 12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0여년의 시간 동안


늘상, 익숙하게 

다소의 불안과 긴장감을 갖고 살았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할까봐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까봐

사회가 정한 시계열에 어긋날까봐


전전 긍긍했다.


대학만 가면

취업만 하면

가정만 꾸리면


평온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새로 열린 문들은

늘 새로운 과제를 주었고

나는 정신 없이 해결하기 바빴다.


9살 어느 날엔

이유 없이 해맑게 웃는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면박을 당한 기억도 있었건만


지금 거울 속 나의 얼굴은

모아이 석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심 노동자의 부캐로

빨간 방울토마토 알알이 열리는 것에

수확의 기쁨을 느끼는 주말 농부를 꿈꿔 본다.


딸아이가 열매만 보면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작가의 이전글 은행원의 퇴근일지 4. 저는 T발C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