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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Oct 19. 2023

은행원의 퇴근일지 6. 바늘 틈도 없는 날


우리 딸건데

어떻게 좀 안될까요?


성인이셔서

위임절차 없인 안됩니다.


외국에 있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영사확인 위임장에

내용을 써서 오셔야 해요.


어떻게 기다려요.

우리 딸 바빠서 휴가 못내.

전화통화로는 안될까?


도돌이표를 달은 이야기 끝에

고객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분명 안 되는 것에 대한

정중한 거절인데


몇 번 거듭하다 보면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나에게 직장은 밥줄이다.

(자아실현은 분명 아니다)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밥줄을 내팽개치는 것과 같다.


고객은 왕이지만

가족은...?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다.


엄마,

너무 매몰차게 거절한 건 아닌지

자다가도 문득 떠오를 때가 있어.

바쁘고 체력적으로 힘드니

날카로워지는 것 같아.


살다보면

누구나 그럴 때가 있어.

마음에 너무 여유가 없어서

바늘 한 틈 들어가지 않을 때가.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데

그 순간엔 그래.


불완전한 한 인간의 곁에

엄마라는 존재가 있어

다행이다.


이 이상의

공감과 위로가 있을까.


찰나였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따뜻함이었다.


잘못해도 괜찮다고 해주는 건

역시나 이 세상에

울 엄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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