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건데
어떻게 좀 안될까요?
성인이셔서
위임절차 없인 안됩니다.
외국에 있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영사확인 위임장에
내용을 써서 오셔야 해요.
어떻게 기다려요.
우리 딸 바빠서 휴가 못내.
전화통화로는 안될까?
도돌이표를 달은 이야기 끝에
고객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분명 안 되는 것에 대한
정중한 거절인데
몇 번 거듭하다 보면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나에게 직장은 밥줄이다.
(자아실현은 분명 아니다)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밥줄을 내팽개치는 것과 같다.
고객은 왕이지만
가족은...?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다.
엄마,
너무 매몰차게 거절한 건 아닌지
자다가도 문득 떠오를 때가 있어.
바쁘고 체력적으로 힘드니
날카로워지는 것 같아.
살다보면
누구나 그럴 때가 있어.
마음에 너무 여유가 없어서
바늘 한 틈 들어가지 않을 때가.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데
그 순간엔 그래.
불완전한 한 인간의 곁에
엄마라는 존재가 있어
참 다행이다.
이 이상의
공감과 위로가 있을까.
찰나였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따뜻함이었다.
잘못해도 괜찮다고 해주는 건
역시나 이 세상에
울 엄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