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김 머시기여.
내가 청약이 한 천만원 있는디
그걸로 대출 좀 받을 수 있을랑가?
딱 보기에도 거동이 편치 않아 보이시는
한 할머니가 자리에 앉으시더니
다짜고짜 이름을 말씀하셨다.
은행엔 입출금 통장도 없고
오래된 청약통장 하나 뿐이라는 할머니.
네~ 가능하죠.
그런데 지금 당장 필요하셔요?
글씨 좀 덜 쓰시게
도장 있으시면 좋을 텐데.
아들한테 물어봐야지.
아들이 사업을 하는데 힘들댜.
엄마 청약 담보로 대출좀 해달라 하는디
일단 아들을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것어?
그러시구나.
그럼 의논 하시구 언제든 오세요.
그래, 고마워.
해지하기엔 마음이 너무 헛헛해서.
조금씩 갚으면서 갖고는 있어야제.
네, 이자는 4만원쯤 나올거에요.
그려... 사실 우리 아들이 xx 은행 다녔어.
퇴직하고 편의점을 열었는데,
바로 옆에 또 들어와서 힘들어졌댜.
지금도 밤새 근무하고 자고 있을거야.
자존심 상하니 어디 연락도 못하고
나한테나 겨우 말하는 거지 뭐.
아... 그러셨구나.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지만
왠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사람이
퇴직하고 벌어먹고 사는 길이란
상상보다 더 녹록치 않음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더군다나 그가 은행원이었다니.
할머니의 돈 천 만원으로
아저씨가 고비를 넘기시길
아니 그냥 할머니의 대출이
굳이 필요 없게 되길 바랐다.
할머니는 알려주어 고맙다며
씩씩하게 뒤돌아 걸어가셨는데
나도 저 나이가 되면
모든 일에 좀 덤덤해지는 것인지
덤덤한 척에 만랩이 되는 것인지
궁금하면서도 궁금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