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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Nov 23. 2023

은행원의 퇴근일지 19. 민원의 계절



처음으로

녹취라는 것을 해보았다.


고객센터에서 연결된 전화 너머에서

다짜고짜 들려오던 고성...


내 잘못은 아니지만

최대한 차분히 응대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차분할수록

상대의 흥분은 점점 더 심해졌고 

고민 끝에 녹취버튼을 눌렀다.


은행 콜센터에서 연결되는 전화에

그냥 다 자동녹취 기능이 있었으면.


은행원에게 전화가 연결될 땐

당신의  가족일 수 있다는

진부한 안내멘트조차 없다니.



어찌어찌 폭언이 한바탕 끝난 뒤

직업이 죄다 생각하며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이번엔 PC 화면 

민원접수 팝이 뜬다.


대상은 내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민원은 반갑지 않은 법.


민원 내용은

4시 넘어 은행에 왔더니

직원이 무안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4시 이후의 대부계는

너무나 바쁘고 정신없다.


그 와중에 상담이 길어지니

해당 직원이 말 실수를 했나 보다.


이것도 사과를 드리고

사건은 종결되었는데


민원의 회수가 잦아지자

우리 모두는 긴장했다.


분명 지점장님께서

역정을 내실 것이기에...



지점장님은

민원의 씨를 없애는 것도

역량 아니냐며 호통하셨다.


맞는 말씀만 하시는

우리 지점장님.


그래도 맨날 칭찬만 받고 컸는데

요샌 맨날 혼만 나며 살려니


어른이란 게 진짜 재미없다.


찬바람이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스미는

민원의 계절엔


몸 사리고 지내는 것이

그나마 남은 자존감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겁쟁이는 사리자, 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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