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왔다. 파주의 집에. 내 파주의 집의 생김새를 모르는 사람은 블로그에 쓴 <파주 변두리에서 살아남기> 를 읽어보고 와주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그것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고양이> 이야기 1편도 같이 읽으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어쨌든 비가 왔다. 따갑도록 세찬 비는 아니었고 적당히 굵게 내리는 비다. 투투투투 소리가 들리는, 슬레이트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흰 종이에 새까만 유성매직으로 그은 선처럼 선명하게 들리는 비였다. 나는 수중 30M까지 방수가 되는 Boss 사의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고 그녀에게 춤추러 가자고 했다. 맨정신으로 그녀와 춤 추는 것은 조금 부끄러웠기 때문에 우리는 데낄라 다섯 잔을 연거푸 마시고 나서야 마당으로 나갈 수 있었다. 집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우리는 거대한 마당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아는 모든 공간을 통틀어 그곳만큼 춤추기에 안성맞춤인 곳은 없다. 우리는 슬리퍼를 신고 마당 한 가운데 블루투스 스피커를 놓았다. 그리고 춤을 추었다. 스피커에서는 왕페이의 <몽중인>,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Dosed>, 씨잼의 <songbird> 리믹스가 나왔다. 아는 부분은 집이 떠나가라 따라 불렀다. 그러면 비는 질세라 시끄럽게 내렸다. 그러자 그녀와 나 사이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해졌다. 빗소리와 음악소리에 묻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를 몇 달 동안 보지 못했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투투투투 때리는 그런 비를 말하는 것이다. 추척추적 오는 비가 아니라 거세게 내리는 비다. 파주의 집에서 살면 그런 비는 맞을 수 있는 비가 되고 춤추기 좋은 비가 된다. 그녀와 나는 서로의 몸에 흐르는 물이 땀인지 비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모를 정도로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추었다. 괴기스러울 만큼 활짝 웃으면서 춘 춤이었다.
뜨끈한 욕조에 물을 받았다. 화장실은 시골집의 화장실이라고 믿기 어렵게 생겼다. 남자 넷이 팔굽혀 펴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화장실은 전체적으로 잘 구워진 나무의 색을 띈다. 마치 촛불같은 조금 어두운 조명이 있다. 대형 티브이만큼 크게 난 창은 창 밖에 나 있는 닭장과 텃밭을 훤히 비출 만큼 큼지막하다. 세면대와 바닥과 장정 두 명은 거뜬히 들어갈 크기의 욕조는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어메니티*는 모두 이솝의 제품이다.
우리는 차가운 비를 맞은 채 따뜻한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들어갔다. 나는 위스키와 얼음을 조금 가져왔다. 창밖으로 닭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과 상추가 시원한 비를 맞는 것이 보였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 마다 상추의 잎이 세차게 흔들렸다. 우선 그녀와 욕조에 들어가고 나니 그 뒤의 과정은 차마 글로 쓰지 못할 만큼 황홀했다. 그 뒤의 일은 아무래도 비밀에 붙여야 할 것 같다. 글로 써버린다면 분명히 온전하게 전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메니티: 호텔이 제공하는 각종 욕실용품과 소모품.
글과 상관 없는 얘기 : 씨잼의 songbird 리믹스 들어보세요.. 중간에 livin in dejavu 가사가 나오는데 기가 막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