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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Apr 15. 2020

마르코 이야기



 게으른 오후, 빌라 창문이 열린다. 5층짜리 작은 건물이다. 소년의 티를 벗어나지 못한 남성이 이불을 털어낸다. 팡, 팡 하는 소리가 게으른 오후의 동네를 깨우진 못한다. 잔잔한 호수에 낙엽 한 장 떨어지는 꼴이다. 문 밖으로 기차 소리가 시끄럽다. 역시 동네를 깨우지 못했는데 그 소리가 퍽 오래전부터 그곳의 일부인 탓이다.


 마르코는 이불을 다 털어내고 방에 누웠다. 그의 공간은 작은 원룸이었는데 해가 잘 든다는 것 말고는 큰 특징이 없다. 앉은뱅이책상 하나와 작은 냉장고, 커피포트, 붙박이장이 그의 살림살이 전부였다. 그들만으로 충분히 꽉 찰 정도로 작은 방이다. 지금은 오후 세시쯤 되어서 햇빛이 방을 노랗게 물들인다. 마르코는 방에 누워 천장을 본다.


 키링-하고 문자가 온다. 친구 A가 500만원을 벌었습니다. 키링- 친구 B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스타중의 스타>에 나왔습니다. 키링- 전여자친구가 ooo과 결혼했습니다. 그녀 남편의 차는 아우디R시리즈랍니다. 연봉은 2억쯤 된답니다. 키링- 사진 한 장, 친구 C가 이렇게 잘생겨졌습니다. 키도 7센티 컸습니다. 키링- 키링- 키링-


 바쁠 땐 보지 못하거나 않는 문자지만 지금은 불행히도 바쁘지 않다. ‘아 참 묘하네’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르코의 마음이지만 마음은 하나 둘이 아니라 마르코는 고통이다.


 바쁠 때의 마르코는 이것저것 만들어다 판다. 프리랜서가 된 그의 마음은 그의 방만큼 노랗다. 그의 방이 곧 그의 마음이 된다. 곧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장을 보러 가기로 한다. 저녁은 뭐로 할까.  


 걸으면서 생각한다. 진짜배기가 되어야 할 텐데. 한숨을 쉰다, 그러나 위선과 눈치에 찌든 우리의 불쌍한 마르코는 잘못이 없다. 그냥 유전자가 그럴 뿐이다. 키링- 친구 D가... 그런 마르코에게 버거운 친구들이다. 걸으면서 저녁 메뉴도 생각한다. 카레가 좋을까, 김치찌개가 좋을까. 당근대신 고기를 두 배로 넣은 카레, 숟가락으로 푸면 돼지고기가 두 개씩 딸려 나오는 그런 김치찌개. 그런 게 진짜배기 아닐까. 결국 고기를 듬뿍 산다.


 해가 깔린다. 동네 전체가 노랗게 된다. 시장 한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이 자전거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간다. 자전거 핸들에는 장 본 비닐봉지들이 걸려있다. 한손에는 하교하는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비닐봉지를 든 사람도 있다. 마르코의 시선이 그 아이의 뒤통수에 멈춘다. 시장의 상인들은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이미 살건 다 샀지만 일부러 시장을 삥 돌아 집에 간다. 느린 그의 걸음을 해가 느리게 쫒아간다.


 집에 도착해 저녁을 만들자. 메뉴는 고기더블김치찌개다. 앞다리 살을 왕창 넣고 김치와 볶는다. 고기 볶는 냄새가 잠시 마르코를 마비시킨다. 물을 적당히 넣고 끓인다. 그 사이 밥을 한다. 밥은 좀 질게 한다. 된 밥은 소화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키링- 친구E가... 저놈의 문자는 알파벳을 다 쓸 작정인가 보다. 마르코가 문자 확인을 하지 않으니 이젠 아리따운 여성의 목소리로 문자를 읽어준다. “친구E가 구찌 가방을 샀습니다.”


 졸린 눈으로 김치찌개를 먹는다. 한 숟갈 풀 때마다 고기가 두 점 씩 나온다. 어둑해진 동네에서 지속적으로 기차소리가 들리다가 다시 멀어진다. 파란, 사이버적인 기차의 불빛이 마르코의 방을 비추고 도망간다. 기차 불빛은 차갑다.


 잠에 들지 못할 걸 알면서도 이불을 깔고 눕는다. 저 키링거리는 소리 때문에 마르코는 삼일 째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있다  밤에는 소리가 20데시벨 정도 더 커진다. 빈도도 늘어난다.


 지루한 햇빛이 유독 눈부신 어느 날 결핍이 산타클로스처럼 찾아왔다.


 “늦어서 미안, 하지만 난 작아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거야.” 결핍이 말했다. 마르코는 작은 결핍이지만 감사해하며 중고매매 사이트에 결핍을 찍은 사진과 함께 그것을 판매한다고 올렸고 작은 결핍엔 작은 사람들이 작게 모였다. 마르코는 중고매매 사이트의 몇 안 되는 댓글들을 팔아 밥을 지어 먹었다.


 다음번엔 더 큰 결핍이 방문해주길 기다려야 할 지, 그건 정말 알 수 없이 어려운 문제다.


 결핍의 방문을 반겨야 할 지, 그건 정말 알 수 없이 어려운 문제다.


 결핍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알고리즘을 바꾸어야 할 지, 그건 정말 알 수 없이 어려운 문제다.


 기차소리는 항상 그에게서 먼 곳부터 시작해 그의 옆을 지나 그에게서 빠르게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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