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일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 Apr 15. 2020

마르코 이야기



 게으른 오후, 빌라 창문이 열린다. 5층짜리 작은 건물이다. 소년의 티를 벗어나지 못한 남성이 이불을 털어낸다. 팡, 팡 하는 소리가 게으른 오후의 동네를 깨우진 못한다. 잔잔한 호수에 낙엽 한 장 떨어지는 꼴이다. 문 밖으로 기차 소리가 시끄럽다. 역시 동네를 깨우지 못했는데 그 소리가 퍽 오래전부터 그곳의 일부인 탓이다.


 마르코는 이불을 다 털어내고 방에 누웠다. 그의 공간은 작은 원룸이었는데 해가 잘 든다는 것 말고는 큰 특징이 없다. 앉은뱅이책상 하나와 작은 냉장고, 커피포트, 붙박이장이 그의 살림살이 전부였다. 그들만으로 충분히 꽉 찰 정도로 작은 방이다. 지금은 오후 세시쯤 되어서 햇빛이 방을 노랗게 물들인다. 마르코는 방에 누워 천장을 본다.


 키링-하고 문자가 온다. 친구 A가 500만원을 벌었습니다. 키링- 친구 B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스타중의 스타>에 나왔습니다. 키링- 전여자친구가 ooo과 결혼했습니다. 그녀 남편의 차는 아우디R시리즈랍니다. 연봉은 2억쯤 된답니다. 키링- 사진 한 장, 친구 C가 이렇게 잘생겨졌습니다. 키도 7센티 컸습니다. 키링- 키링- 키링-


 바쁠 땐 보지 못하거나 않는 문자지만 지금은 불행히도 바쁘지 않다. ‘아 참 묘하네’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르코의 마음이지만 마음은 하나 둘이 아니라 마르코는 고통이다.


 바쁠 때의 마르코는 이것저것 만들어다 판다. 프리랜서가 된 그의 마음은 그의 방만큼 노랗다. 그의 방이 곧 그의 마음이 된다. 곧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장을 보러 가기로 한다. 저녁은 뭐로 할까.  


 걸으면서 생각한다. 진짜배기가 되어야 할 텐데. 한숨을 쉰다, 그러나 위선과 눈치에 찌든 우리의 불쌍한 마르코는 잘못이 없다. 그냥 유전자가 그럴 뿐이다. 키링- 친구 D가... 그런 마르코에게 버거운 친구들이다. 걸으면서 저녁 메뉴도 생각한다. 카레가 좋을까, 김치찌개가 좋을까. 당근대신 고기를 두 배로 넣은 카레, 숟가락으로 푸면 돼지고기가 두 개씩 딸려 나오는 그런 김치찌개. 그런 게 진짜배기 아닐까. 결국 고기를 듬뿍 산다.


 해가 깔린다. 동네 전체가 노랗게 된다. 시장 한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이 자전거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간다. 자전거 핸들에는 장 본 비닐봉지들이 걸려있다. 한손에는 하교하는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비닐봉지를 든 사람도 있다. 마르코의 시선이 그 아이의 뒤통수에 멈춘다. 시장의 상인들은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이미 살건 다 샀지만 일부러 시장을 삥 돌아 집에 간다. 느린 그의 걸음을 해가 느리게 쫒아간다.


 집에 도착해 저녁을 만들자. 메뉴는 고기더블김치찌개다. 앞다리 살을 왕창 넣고 김치와 볶는다. 고기 볶는 냄새가 잠시 마르코를 마비시킨다. 물을 적당히 넣고 끓인다. 그 사이 밥을 한다. 밥은 좀 질게 한다. 된 밥은 소화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키링- 친구E가... 저놈의 문자는 알파벳을 다 쓸 작정인가 보다. 마르코가 문자 확인을 하지 않으니 이젠 아리따운 여성의 목소리로 문자를 읽어준다. “친구E가 구찌 가방을 샀습니다.”


 졸린 눈으로 김치찌개를 먹는다. 한 숟갈 풀 때마다 고기가 두 점 씩 나온다. 어둑해진 동네에서 지속적으로 기차소리가 들리다가 다시 멀어진다. 파란, 사이버적인 기차의 불빛이 마르코의 방을 비추고 도망간다. 기차 불빛은 차갑다.


 잠에 들지 못할 걸 알면서도 이불을 깔고 눕는다. 저 키링거리는 소리 때문에 마르코는 삼일 째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있다  밤에는 소리가 20데시벨 정도 더 커진다. 빈도도 늘어난다.


 지루한 햇빛이 유독 눈부신 어느 날 결핍이 산타클로스처럼 찾아왔다.


 “늦어서 미안, 하지만 난 작아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거야.” 결핍이 말했다. 마르코는 작은 결핍이지만 감사해하며 중고매매 사이트에 결핍을 찍은 사진과 함께 그것을 판매한다고 올렸고 작은 결핍엔 작은 사람들이 작게 모였다. 마르코는 중고매매 사이트의 몇 안 되는 댓글들을 팔아 밥을 지어 먹었다.


 다음번엔 더 큰 결핍이 방문해주길 기다려야 할 지, 그건 정말 알 수 없이 어려운 문제다.


 결핍의 방문을 반겨야 할 지, 그건 정말 알 수 없이 어려운 문제다.


 결핍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알고리즘을 바꾸어야 할 지, 그건 정말 알 수 없이 어려운 문제다.


 기차소리는 항상 그에게서 먼 곳부터 시작해 그의 옆을 지나 그에게서 빠르게 멀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짜파게티와 치즈케이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