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스물여덟 살 권나현은 말했다. 스물 둘인가 스물 셋인가부터 나는 점점 죽어가는 것 같아. 이 상태로 백 살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 뭘 먹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어. 아르바이트만 하고 적은 월급으로 한 달 벌어 한 달 살고 스물일곱인데 진정한 사랑 같은 거 한 번 해본 기억이 없고. 오래 서 있는 햄버거 집 아르바이트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무릎과 허리가 아프고 밤새 들여다보는 핸드폰 때문에 눈은 안 좋아지고 거북목은 심해지고 열심히 일해도 부자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 버렸고.
요즘 들어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게 겁이 나. 죽을 때가 되면 가장 활짝 피는 꽃이 된 느낌이 들어. 이 기세라면 사십 살 전에 죽을 것 같아.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기생충이 된 기분이야. 사회에서도. 톱니바퀴의 틈에 서식하는 작은 생물이 된 기분이야.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여버린 걸까? 이젠 정말 구원자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
그래서 권나현은 서른넷인가 그 즈음 여름에 죽었다. 그 해 여름은 도무지 덥지가 않았다. 겨울은 춥지가 않았다. 그 해 겨울 한국에는 눈도 오지 않았다. 사계절은 사라지고 공기만 나빠졌다. 마스크는 필수품이 됐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 세계에서 죽음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다. 죽음은 은근슬쩍 옆에 있었다. 죽는다면 어떨까? 부터 시작되는 죽음의 인연은 점점 커져 더 이상 죽음 말고는 선택지가 없을 때 곁에 있던 죽음이 뚜벅뚜벅 한 두 걸음만 떼서 찾아가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젊은이들이 죽었다. 노인들은 고독해졌다. 어린 아이들은 롤모델을 잃었다.
권나현의 남동생 권필립은 누나가 죽을 때 열세살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누나와 단 둘이 원룸에서 살았다. 언제부턴가 누나에게서 나는 죽음냄새 때문에 누나를 안고 잘 수 없었다. 누나가 죽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초등학생이 혼자 사는 집에 온통 죽음 냄새가 가득했다. 필립은 그 냄새를 마시며 자랐고 누나를 죽게 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음악을 시작했다. 죽음의 냄새를 맡으면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었다. 일종의 비법 같은 거랄까.
결국 필립은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인기가수가 됐다. 나아가 잘나가는 연예인이 됐다. 그의 음악에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죽음냄새를 맡으며 만든 노래들이니까. 명품을 차고, 비싼 술집에서 허리에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며 놀았다. 표가 비싼 콘서트를 열면 비싼 표를 살 수 있는, 있는 집의 딸들은 무대 밑에서 그를 보고 울었다. 너무 좋아서, 너무 멋있어서. 필립은 그녀들 중 한명을 골라 자신의 이층집으로 초대하고 같이 잤다.
제니는 필립이 같이 잔 여자 중 한명이었다. 아버지는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다. 필립에게 푹 빠져버렸다. 필립에겐 항상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향이 났는데 제니는 그 향에 중독되었다. 제니는 필립을 계속 찾고 원했지만 필립에게 그녀는 수많은 여자들 중 한명일 뿐이었다. 제니는 고통스러워하다 어느새 늙어버렸다. 필립도 늙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