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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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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I May 23. 2020

이별은 짧게

어떤 이별에 있어서든 말이 많은 걸 싫어했다.
 
아니 무슨 사람이 감정 없는 로봇도 아니고
(요즘은 로봇에도 감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별은
쿨해야지
뒤끝이 없어야지
깔끔해야지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보이지 않는 감정까지

깔끔하게 정리되는 건 아니지만
표면적으로는 상황을 질질 끌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기나긴 변명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마음먹은 이상 그렇게 해야 했다.
모든 연결고리를 끊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걸로 끝났다.
이별여행이나 송별회,

롤링페이퍼 돌리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았으면 했다.
 
이별의 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내 감정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남들 앞에선 쿨한 척 애를 썼다.
 
이미 예정된 이별이고
예상했던 감정이고
언제고 행해졌을 일인데
왜들 그래요?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돌아 나와서는 혼자 끙끙 앓았다.
마지막 편지를 읽고서는 펑펑 울었다.
이별의 순간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슬픔의 감정은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거니까
내가 견뎌내는 것이 마땅하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 일도 쉽지 않아 졌다.
 
그냥 그때 마음껏 울걸
그냥 그때 하고 싶은 말 다 뱉어버릴 걸
그랬어도 분명 후회했겠지만,
 
살아감에 있어 감정을 숨긴다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모든 걸 내뱉을 수 없기에
 
속은 썩어 문드러져도
고통은 몇 배가 될지라도
나는 아마 그렇게
혼자 삭이는 방법을 더 깊이 연구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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