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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I May 23. 2020

당신은 몇 살 때의 일까지 기억하나요?

원더풀 라이프(1998) 영화를 보면, 한 남자가 자신의 생후 5~6개월 때의 일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다가도 ‘정말인가?’ 싶을 정도로 믿게 되는 구석이 있다.


그러다 나도 한 번 떠올려봤다. 나의 가장 어렸을 적 기억은 과연 몇 살 때인지,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무엇인지_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전기밥솥에서 나오는 연기 같은 하얀 김이 신기해서 뜨거운 열기가 나오는 그 구멍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뗐다 했던 기억이 있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때라 그게 뜨거운 건지 뭔지 알지도 못한 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우리 집은 그 당시 세간살이가 단출해서 밥통을 올려놓을 찬장도 없었다. 그래서 바닥에 있던 밥통에 내가 손가락을 갖다 댄 것이다. 엄마는 불같이 화를 내고 아빠도 놀래서 큰 소리 내던 기억이 있다. 손가락 화상 입으면 어쩌나 싶어 이래저래 나에게 많은 말을 했던 흐릿한 기억... 처음으로 엄마에게 심하게 혼났던 날이라 내 머릿속에 콕 박혔나 보다.


엄마에게 물어봤다.
밥통에 손가락을 대서 혼났던 때가 몇 살 때냐고

‘그게 아마 돌 지나고 얼마 안 됐을 때인 것 같은데?’
‘설마 그게 기억난다고?’

사실 나도 조금 놀랬다.
그게 그렇게 어렸을 적 일이라니
그럼 내가 무려 돌 때의 일을 기억한단 말인가?

사람의 기억은 단편적인 것 강렬했던 것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것만 골라 기억하기 때문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오늘은 더 이상 기억을 떠올리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일들을 끄집어내면 낼수록 기억에 대한 혼란을 가져오는 것 같았다. 영화 속 그들이 ‘림보’라는 공간에서 행했던 ‘나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을 선택하는 일’ 따위는 언젠가 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닌 것 같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잊고 싶은 기억도, 소중했던 기억도
그 어떤 것도 나에겐 아직 선택할 만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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