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1986년 나의 잿빛 스무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스무살이 어린나이라는 것을, 나 역시 알지 못했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행복했던 기억이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기에 그때의 기억도 공기도 그 어떤 것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몇 년에 한번씩 새로 들어오는 아버지의 여자들과, 점점 비뚤어져가는 남동생을 바라보는 일이 버거웠다. 친엄마 금마씨는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늘 자유롭게 살기를 갈망했던 금마씨. 그녀는 나와 내 동생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가족들의 울타리가 없는 삶 속에서 나는 더이상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새어머니와의 불편한 식사와 대화는 단 한순간도 맘편한 적이 없었고, 집에 있는 시간들은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도대체 그녀들은 아버지의 어디가 좋아서 이 허름하고 낡은 지하단칸방에 들어오는 건지, 나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아버지는 변변한 직업이 없었다. 한달에 20일 정도는 공사현장에서 벽돌을 쌓으며 돈을 벌었다. 일명 '조적공'이라 불리는데, 건설기술은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이였다. '노가다' 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늘 허리, 다리, 손목 등 안 아픈 곳이 없어 파스 붙이는 일이 밥먹는 일보다 잦았다. 그런데도 그의 대쪽같은 자존심은 꺾일 줄 몰랐다. 현장에 다니면서도 늘 위아래 깨끗한 정장을 갖춰입고 출근하며, 퇴근할 때도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로 집에 돌아오곤 했다. 187cm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무뚝뚝하지만 때로는 다정한 성격 때문이었을까? 경제적 능력이 없던 아버지의 곁에는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와는 점점 틀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엄마는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짐을 싸서 집을 나갔고,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가까운 전문대에 입학했다. 그것도 통신과에. 통신이 도대체 뭔지 알지도 못하던 시대에 나는 대학이라는 곳에서 2년간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나는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미대에 가고 싶다는 열망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없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현실을 돌아보면 진흙탕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지렁이보다도 못한 삶이었다. 로망이자 꿈이었던 그림은 가슴깊이 묻어두기로 했다. 언제 다시 꺼낼지 모를 핑크빛 상자 속에. 전문대를 졸업하고나니 더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가족들 곁을 떠나기로 했다. 그곳이 어디든 무엇을 하든 여기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대들은 나의 스무살을 하찮게 여겼겠지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의 펄떡이는 가슴엔 사랑이라는 것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사랑을 주는 법도 몰랐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내 몸뚱아리 하나 비빌곳 없을까 싶었다. 어떤 계획도 없었다. 무모했다. 조금이라도 가족들과 먼 곳에서 살고 싶었고 그래서 선택한 곳이 '부산'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이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처음 내려간 부산이라는 곳은 척박하고 낯선 땅이었다.
부산에 내려간 때가 스물한 살, 찬바람이 불던 계절이었다. 나는 당장 먹고 잘 돈도 없었다. 일을 찾아 길거리를 헤맸다. 부산 서면, 남포동, 동래... 부산 사람들의 억센 사투리와 전쟁같은 일상 속에 나는 홀로 남겨졌다. 인력사무소로 갔지만 나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인력사무소 소장님도 나를 딱하게 여겼다. 나이는 어린데다 경험도 없고 변변치 않은 외모에 말주변도 없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밥하고 청소하는 일 뿐이었다. 그러다 스무가지의 메뉴를 파는 한 식당에 주방보조로 들어갔다. 설거지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동안 식당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새로 들어온 주방장이었다. 어쩐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부산 사투리도 쓰지 않았다.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 호감형 얼굴을 가진 그가 계속 신경 쓰였다. 당시 나의 자존감은 항상 껌딱지처럼 바닥에 붙어있었다. 작은 키에 잘난 것 없는 외모 때문일까. 사랑받지 못한 메마른 어린시절 때문일까. 소소하게 챙겨주는 그의 배려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갔다.
고기가 들어간 맛있는 메뉴를 만들 때면 늘 재료를 조금씩 남겨서 나에게 요리를 해주곤 했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식당 주방에서 그가 해주는 요리를 먹을 때면, '밥은 굶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가 맛있다는 말을 하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곤 하였다. 그는 아버지 다음으로 내가 만났던 두 번째 남자였다. 서글서글한 호감형 인상에 내 맘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잘생긴 외모에 약한 듯 하다. 하지만 그의 삶도 변변치 않았다. 나보다 아홉살이 많았던 그는 전라도 시골땅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온갖 잡일을 하며 자리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방 한 칸 없는 몸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그와 나의 미래는 설렘보단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내 곁에는 이 남자 말고 아무도 없다. 기댈 곳이라고는 오로지 이 사람 하나였다. 나는 그렇게 스물 한살에 그를 처음 만났다. 사람의 인연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같다는 것이 가장 잘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억지로 잡을래야 잡을수도 없고, 끊어낼래야 끊어낼 수도 없는 그와 나의 질긴 인연이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