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환갑을 지났다
이상하게도 매년,
아버지의 생일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엄마와 나는 생일이 여름이라 같이 챙기기도 하고,
또 엄마에겐 뭘 원하는지 확실한 답을 들을 수 있어서 비교적 수월하다.
그런데, 아버지의 생일은
무얼 해드려야 할지 참 고민도 되고
대충 챙기자니 죄송스럽기도 하고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이 많았다.
특히 올해는 환갑이라
더 머리가 아팠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 대수랴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겨우 딸 하난데, 쉽게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요즘 환갑은 말이 환갑이지
노인축에 끼지도 못할만큼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며 젋게 사신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시고_
미리 연락한 고모 식구들과 함께
전주에서 식사 한 끼 했다.
다른 식구들은 일년에 한두번씩은 꼭 봤겠지만
나는 집에 제사가 있거나
친척들 오는 날이면 절대 안 들어가기 때문에
얼굴본지가 도대체 몇 년 된건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일전에도 쓴 적이 있는데,
나는 친척들을 보는 게 참 불편하다.
친척들이 나를 괴롭힌것도 아니고,
나한테 뭐라 한 것도 아닌데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면서
마주보는 것이 어색하고 껄끄럽다.
그들도 아마 혼기 꽉 찬 조카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다.
서로 가까운 곳에 살며
왕래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일년에 두세번,
제사나 명절때 얼굴보는 게 다인데
무슨 할 말이 있고 뭐 그리 반가울 게 있을까
어젠 6남매인 아버지의 형제 중
여동생만 둘이 왔다. 나에겐 둘째고모, 셋째 고모_
6남매의 순서는
큰고모, 아빠, 첫째 작은 아빠, 둘째 작은 아빠, 둘째 고모, 셋째 고모
이렇게 아들 셋, 딸 셋인데
담양사는 큰고모 내외는 아들 상견례 일정으로 오지 못하셨고,
의정부 사는 작은 아빠와 둘째 작은 아빠는
당연히 못 온다고 하셨을테고
결국, 둘째 고모내외와 아들 하나,
셋째 고모내외와 아들 하나,
그리고 우리집 세 식구가 모여 식사를 했다.
생각해보니 둘째 고모의 막내 아들은 올해로 고1이라는데,
갓난아기 때 보고 처음 본다. 딱 16년 만이다.
키가 180이라는데 깜짝 놀랬다.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다.
셋째 고모의 첫째 아들은 제대하고 올해로 24살이란다.
벌써 그렇게 되다니_
하긴 내 나이가 이러하니, 할말은 없다.
얘도 중학교 때인가 마지막으로 보고 성인되서는 처음인데
보고 깜짝 놀랬다. 너무 잘 커서
고모 둘 내외분은
세월이 흐른만큼 얼굴도 많이 변하셨지만, 대화 패턴은 여전했다.
술 마시는 것도 고모랑 아빠는 좋아하는데
늘 그렇듯 사위들은 안 마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셋째 고모의 24살인 첫째 아들이 참 잘 컸다는 것이다.
셋째 고모 내외는 술을 마실 때면, 아들이 운전해서 데리러 온단다.
참 쓰기 아까운 운전기사다. 얼마나 든든할까싶다.
인상도 착한 것이 다시 봐도 아까운 청년이다.
서로 어색함을 달래보려 농담도 섞어 던져보지만,
분위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둘째 고모부는 할 말이 참으로 없었는지
결국 이 자리에 오지 않은 작은 아버지들 이야기를 꺼낸다.
연락은 하시냐고... 아빠에게 묻는다.
사실 아빠도 할 말이 없다.
남자 형제가 셋인데, 의정부 사는 작은아버지 두분이 가족들에게 일체 연락을 안한다.
올해는 큰고모가 여러번 사고도 겪고 많이 아프셨는데도,
누나 얼굴 보러 한번 내려온 적이 없다 하고...
물론 연락도 없었고,
제사 때도 이제 전주에 못 내려간다 하고
그냥 아예 연을 끊을 생각인가보다.
나야 뭐 상관 없지만,
아빠의 속은 얼마나 쓰릴까 싶다.
한편으론, 장남인 아빠를 무시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계시니 결국 이렇게 흐지부지 되는구나 싶다.
집안의 대소사는 아빠 혼자 다 챙기고 있다.
이럴 때 난, 형제 없는게 속 편하다.
1차 식사를 끝내고 나는 밥값을 계산했다.
식사 후 나와 엄마만 집으로 먼저 왔다.
아버지와 다른 식구들은 한 잔 더 하러 간다며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하루가 끝이 났다.
엄마는,
환갑 두 번 치뤘다가는 큰일나겠다고
본인 환갑 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농담이시겠지만, 그만큼 가족들에게는 참 길었던 시간이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아버지의 환갑이
이렇게 지나간다.
말은 안했지만,
우리 모두 나이 들어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하루였다.
함께 나이들어감을 느끼며 더욱 단단해지기를.
그리고 싫든 좋든
이젠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나갈 거라는 걸 인정해야 할 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