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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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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I Jul 26. 2020

인정해야 할 때

아버지의 환갑을 지났다  
 
이상하게도 매년,

아버지의 생일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엄마와 나는 생일이 여름이라 같이 챙기기도 하고,
또 엄마에겐 뭘 원하는지 확실한 답을 들을 수 있어서 비교적 수월하다.
 
그런데, 아버지의 생일은
무얼 해드려야 할지 참 고민도 되고
대충 챙기자니 죄송스럽기도 하고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이 많았다.
 
특히 올해는 환갑이라

더 머리가 아팠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 대수랴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겨우 딸 하난데, 쉽게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요즘 환갑은 말이 환갑이지
노인축에 끼지도 못할만큼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며 젋게 사신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시고_

미리 연락한 고모 식구들과 함께

전주에서 식사 한 끼 했다.
다른 식구들은 일년에 한두번씩은 꼭 봤겠지만
나는 집에 제사가 있거나

친척들 오는 날이면 절대 안 들어가기 때문에
얼굴본지가 도대체 몇 년 된건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일전에도 쓴 적이 있는데,
나는 친척들을 보는 게 참 불편하다.
친척들이 나를 괴롭힌것도 아니고,

나한테 뭐라 한 것도 아닌데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면서

마주보는 것이 어색하고 껄끄럽다.
그들도 아마 혼기 꽉 찬 조카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다.
 
서로 가까운 곳에 살며

왕래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일년에 두세번,

제사나 명절때 얼굴보는 게 다인데
무슨 할 말이 있고 뭐 그리 반가울 게 있을까
 
어젠 6남매인 아버지의 형제 중
여동생만 둘이 왔다. 나에겐 둘째고모, 셋째 고모_
 
6남매의 순서는
큰고모, 아빠, 첫째 작은 아빠, 둘째 작은 아빠, 둘째 고모, 셋째 고모
이렇게 아들 셋, 딸 셋인데
 
담양사는 큰고모 내외는 아들 상견례 일정으로 오지 못하셨고,
의정부 사는 작은 아빠와 둘째 작은 아빠는
당연히 못 온다고 하셨을테고
 
결국, 둘째 고모내외와 아들 하나,
셋째 고모내외와 아들 하나,
그리고 우리집 세 식구가 모여 식사를 했다.
 
생각해보니 둘째 고모의 막내 아들은 올해로 고1이라는데,
갓난아기 때 보고 처음 본다. 딱 16년 만이다.
키가 180이라는데 깜짝 놀랬다.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다.
 
셋째 고모의 첫째 아들은 제대하고 올해로 24살이란다.
벌써 그렇게 되다니_​
하긴 내 나이가 이러하니, 할말은 없다.
얘도 중학교 때인가 마지막으로 보고 성인되서는 처음인데
보고 깜짝 놀랬다. 너무 잘 커서
 
고모 둘 내외분은
세월이 흐른만큼 얼굴도 많이 변하셨지만, 대화 패턴은 여전했다.
 
술 마시는 것도 고모랑 아빠는 좋아하는데
늘 그렇듯 사위들은 안 마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셋째 고모의 24살인 첫째 아들이 참 잘 컸다는 것이다.
셋째 고모 내외는 술을 마실 때면, 아들이 운전해서 데리러 온단다.
참 쓰기 아까운 운전기사다. 얼마나 든든할까싶다.
인상도 착한 것이 다시 봐도 아까운 청년이다.
 
서로 어색함을 달래보려 농담도 섞어 던져보지만,
분위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둘째 고모부는 할 말이 참으로 없었는지
결국 이 자리에 오지 않은 작은 아버지들 이야기를 꺼낸다.
연락은 하시냐고... 아빠에게 묻는다.
 
사실 아빠도 할 말이 없다.
남자 형제가 셋인데, 의정부 사는 작은아버지 두분이 가족들에게 일체 연락을 안한다.
올해는 큰고모가 여러번 사고도 겪고 많이 아프셨는데도,
누나 얼굴 보러 한번 내려온 적이 없다 하고...
물론 연락도 없었고,​
제사 때도 이제 전주에 못 내려간다 하고
그냥 아예 연을 끊을 생각인가보다.

나야 뭐 상관 없지만,
아빠의 속은 얼마나 쓰릴까 싶다.
한편으론, 장남인 아빠를 무시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계시니 결국 이렇게 흐지부지 되는구나 싶다.
집안의 대소사는 아빠 혼자 다 챙기고 있다. ​

이럴 때 난, 형제 없는게 속 편하다.
 
1차 식사를 끝내고 나는 밥값을 계산했다.
식사 후 나와 엄마만 집으로 먼저 왔다.
아버지와 다른 식구들은 한 잔 더 하러 간다며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하루가 끝이 났다.
엄마는,
환갑 두 번 치뤘다가는 큰일나겠다고
본인 환갑 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농담이시겠지만, 그만큼 가족들에게는 참 길었던 시간이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아버지의 환갑이
이렇게 지나간다.

말은 안했지만,
우리 모두 나이 들어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하루였다.
함께 나이들어감을 느끼며 더욱 단단해지기를.
그리고 싫든 좋든
이젠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나갈 거라는 걸 인정해야 할 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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