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처음 알게 된 날은 정확히 2012년 5월 8일. 그러니까 8년 전, 어버이날 이었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지만,
어버이날이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박혀
한동안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처음 만난 그 날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늘상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날짜 하루하루를 꼼꼼히 기록했다.
지금도 습관처럼 핸드폰에 매일 해야 할 일들과
다음 주의 계획, 빠져나가야 할 지출, 구입 목록
기억해야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저장한다.
당신과 만났던 날도 꼭 달력에 체크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만난 날로부터
지금 몇일이 지난건지 그게 궁금했고,
'일주일이 지났네' '지난주엔 수요일에 만났네' 등등
떠올리지 않아도 될 일들을 곱씹으며 다음 계획을 생각하곤 했다.
당신을 처음 알게 된 날로부터
정확히 8년하고도 3개월이 아직 채 안됐다.
8월 8일이면 8년 3개월이다.
숫자에 불과한 날들이다.
난 뭉뚱그려 계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싫다' 까진 아니지만,
좋아하지 않는 건 분명하다.
한 달 전쯤인가, 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벌써 알게 된지 10년이 다 되가더라고'
10년이라니, 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그 숫자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게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아직 10년 아니야, 8년 조금 넘었어'
'그게 그거지 뭐'
'아니, 어떻게 2년 정도 되는 기간을 반올림할 수가 있어?'
거기서 그 대화는 멈췄지만, 내 머릿속엔 계속해서 10년이라는 글자가 따라다녔다.
아무래도 나는 10년이 오는게 싫었나봐.
아니면 알게 된 지 10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는게 싫었던 걸까?
처음 만난 그 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변함없이, 그대로라는 게
좋은 의미일 수도 나쁜 의미일 수도 있다.
'참 사람 안 변해'
시간이 흐를 수록 매일같이 드는 생각이었다.
그냥 그 사람을 인정하는 편이 나았다.
내 식대로 바꾸려고 드는 순간,
모든 것은 힘없이 부서졌다.
그건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었다.
당신도 때로는
나를 바꾸려고 시도 정도는 했던 것 같아.
하지만 내가 절대 용납하지 않았겠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한편으론
아직 10년이라는 시간이 오지 않았으니까,
우리에겐 아직 1년 9개월이라는 기한이 남아있어.
그 징그러운 숫자가 오기 전에
빨리 어디론가 도망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아, 그땐 내 나이가 벌써 몇이지.
그 긴 시간동안 당신한테 쏟아부은 내 감정들은
얼마만큼의 비가 되어 흘렀는지
수치로 나타낼 수가 없다.
내 시간이 귀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귀하지 않게 느껴진다.
이 시간이 허투루 지나가지 않았으면 싶다가도
그냥 허투루 지나갔으면 싶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을 때가 많아서,
당신한테도 가끔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