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시작

기억을 붙잡아야 할 때

by MUNI

영화든 소설이든
언젠가는 어떤 형식으로라도

그때의 이야기를 남길 생각이었다.


어떤 형태이던간에
그 이야기가 나오기 위해서는
점차 사라져가는 나의 기억들을

조금이라도 기록해두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인터파크에서 구입한 7권의 책들이 도착했다.
가장 먼저 펼쳐든 건,
얇은 두께가 참 만만해보이는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이었다.
캣우먼 임경선씨의 에세이에 나오는 추천도서라 언젠가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책인데,
이 정도로 얇을 줄은 몰랐다. 부담없어 좋다.

책의 서두를 읽는 순간,
왠지 내 이야기를 들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한 줄로 시작되는 작가의 이야기는 소름끼치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일일이 줄을 그으면서 읽고 싶을 정도로
나는 단숨에 얇은 책 한 권을 읽어냈다.
그리고 책을 덮자마자 현재와 과거의 나를 지배하는 그의 존재를 떠올렸다.


도저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내 몸 세포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그의 존재를
어떻게하면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글로 남길 수 있을까

어제도 오늘도 지금 이 시간에도 나는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십번 내 손가락이

그의 전화번호를 누르려 하고
머릿속에선 온통 그의 휴대폰 번호 열한자리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떠올리기만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많은 상처를 안겨준 사람
101가지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