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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I Jan 18. 2022

이미 충분한 날

섬진강, 겨울 강가에서


낯선 시골길에서 흩날리는 눈을 온몸으로 맞았다.

 내리는 순간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날은 

1년에  꼽을 정도

그래서 더 펑펑 쏟아지길 바랐는지 모른다.


동네 사람들조차 나오지 않는 추운 날씨에

어색한 듯 서성대는 이방인의 모습을 하고 강가를 걸었다.

이 작은 오수천을 따라 걸으면 섬진강으로 이어지기에

약간의 설렘을 안고 걷는 길


봄 햇살 따사로운 섬진강을 생각하면 안된다.

때로는 얼어버린 섬진강의 외로운 모습도 

바라봐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아낀다면 사계절 그 어떤 모습도 사랑해야겠지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 겨울 강가에서





어느정도로 두껍게 얼었는지 알 수 없는 차가운 강가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인다. 많이 내릴 것 같진 않다.

걷다보니 구름 사이로 반짝 한 게 등이 후텁지근 하다.  


내가 찾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행복했다.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는 건

나에겐 수행과도 같은 것이기에

오늘은 결코 평범한 날이 아니다.


때론 고되기도 했지만

살아있음을 오롯이 느끼게 되는 고마운 순간

정확히 무얼 하고 왔는지

알면서 찍었는지 모르고 찍었는지 온통 흐리멍텅하다.

그래도 겨울의 강가를 걸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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