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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im Nov 09. 2018

새콤한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로스팅 포인트에 대해

커피의 맛은 참 많은 과정들을 거쳐 완성됩니다. 커피나무의 품종, 산지의 기후, 수확 후 가공법, 운반수단, 품질 분류, 저장기간, 로스팅 포인트, 그라인더의 성능, 추출방법, 추출기의 성능, 바리스타의 실력과 마음자세, 마시는 사람의 취향, 마시는 곳의 분위기와 태도 등등. 이렇게 많고 많은 필터들을 거쳐 내손에 들린 커피 한 모금이 충분히 만족스럽다면 그만한 행운이 어디 있겠습니까.


얼마 전 친구와 연희동에 있는 한 로스터리 카페를 들렀습니다. 평소 무난한 다크 로스트 블렌딩을 주문하던 그가 에티오피아 원두를 고르더군요. 웬일인가 싶어 "그 원두는 특히 알싸한 신맛이 날건..."라고 했더니   "괜찮아 난 새콤한 커피도 좋아"라며 새초롬하게 대답하더군요.


요즘 기호에 따라 원두를 선택하여 마실수 있도록 여러 블렌딩을 마련해놓는 카페가 늘고 있습니다. 확실히 커피의 맛을 구분하며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죠.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보통 두 가지 정도의 원두를 준비해 두는 것 같더라구요  "과일과 같은 산미", "고소한 맛과 묵직한 바디" 실제로 두 원두를 내려 마셔보면 그 맛이 차이가 확연합니다. 커핑을 하지 않았던 분들도 맛을 보고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요.  각각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에 골라마시는 재미도 있고 해서  카페에 들를 때면 입구에서부터 행복한 고민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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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부제처럼 오늘은 로스팅 포인트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 근데 새콤한 커피가 도대체 로스팅이 무슨 관련이 있냐고요?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요. 맛의 차이는 품종과 원산지에 따른 것이 아니냐? 그것도 맞는 말 입니다만 로스팅도 그에 못지않게 커피맛을 만들어내는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일반적으로 로스팅이라고 하면 커피콩을 볶는 고소한 향기를 많이 연상하실 겁니다. 로스터리 카페에 앉아 원두 볶는 냄새를 즐기며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거나, 골목을 지나면서 코끝을 간지럽히는 고소한 향기에 눈을 돌려보니 로스팅 기계가 있었다던지요. 저마다의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커피의 로스팅은 이제 어느 정도 일반적이게 되었습니다.


로스팅은 말 그대로 커피 원두를 굽는 것입니다. 바리스타들은 로스팅 기계를 다룰 때 호텔의 주방장이 스테이크를 구울 때처럼 아주 심혈을 기울여 콩을 굽습니다.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한 점의 삼겹살을 구울 때도 적당한 온도, 뒤집는 타이밍 등등 그 미묘한 감각들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한 방울의 육즙도 결코 놓칠 수 없는 그때의 간절함을 대입해 생각해보시면 바리스타의 고뇌를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을 실 겁니다.


고기를 굽는 범위의 끝은 두 개로 나뉘죠. 빠싹 굽느냐(웰던), 육즙이 살아있게 어느 정도만 익히느냐(레어). 전자는 어떤 고기이든 간에 아주 고소한 풍미를 느낄 수 있고, 후자는 부위별 특징을 풍부하게 음미할 수 있는 게 장점입니다. 커피 원두도 마찬가지로 바싹 굽느냐, 적당하게 굽느냐에 따라 도드라지는 맛의 차이가 있는데요. 눈치가 빠른 분들은 앞의 예시로 이미 유추하셨을 겁니다. 커피 원두도 마찬가지로 구우면 구울수록 묵직한 바디감 와 고소한 맛이 올라오고, 적당히 익힐수록 원두 고유의 맛과 향미가 살아있습니다.


친구가 좋다고 했던 새콤한 맛은 원두를 중간 정도 볶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과일 같은 신맛입니다. 산지별로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커피에서 좋다고 느끼는 신맛은 오래되어 산패된 시큼한 맛이나, 품질이 좋지 않은 원두에서 느껴지는 떫고 쓴 신맛이 아닌 복숭아, 살구, 체리, 오렌지 같은 달달하고 상큼한 신맛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상큼함을 잘 우려낸 아이스커피 한잔은 마치 아이스티를 마시는듯한 청량감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이 좋은 신맛을 구성하는 성분들은 생두를 볶으면서 점점 살아나다가 어떤 지점에서 최고점을 찍고 그 이후로는 볶을수록 점점 소실됩니다. 그래서 열대과일같이 상큼한 맛이 일품인 원두는 너무 태우지 않고 적당히 볶아내어 그 맛을 살려놓는 것이 핵심입니다.


굽기에 차이를 두며 최적의 로스팅을 찾습니다.



신맛뿐만이 아니라 단맛, 아로마, 바디, 너티 등등의 다른 커피의 매력 요소들도 콩의 굽기에 따라서 계속 살아나기도, 혹은 계속 줄어들기도 하는데 이 각각의 맛을 적절히 끌어당기고 조율해서 최적의 균형을 찾는 것이 커피 로스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 스페셜티 협회(SCAA)에서는 이런 맛들을 평가하기 위해서 커피 원두의 맛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표준적인 로스팅 포인트를 제시하며 그것을 샘플 로스팅(Sample Roasting)이라고 부릅니다.


샘플 로스팅에 맞게 로스팅할 때의 핵심 사항은 온도와 시간입니다.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에서 일정한 열을 가하며 굽기의 정도를 시간으로 구분시키는 것이 중요하죠.


콩은 굽는 시간에 따라 색이 점점 진해진다.



이런 굽기에 따른 맛의 차이 때문에 품종이나 추출법에 따라서 사용하는 원두의 로스팅 포인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산지에 따른 원두별 본연의 향을 잘 느낄 수 있는 핸드드립의 경우 비교적 덜 볶은 원두를 사용하고요, 고소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크 로스팅된 원두를 에스프레소로 내려 마시곤 하죠.


오늘은 다크로스팅 직전까지 구운 과테말라를 콜드 브루 잉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아주 다채롭고 초콜라 티가 풍부한 한잔이었습니다. 친구는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마셨습니다. 새콤한 게 좋다고 하지 않았냐 물어보니 그래도 평소에 먹던 게 더 좋다고 합니다. 최고의 로스팅포인트를 프랑스에선 프렌치를, 일본에선 풀 시티 미국에선 아그트론을 최고로 꼽습니다만. 어떤 로스팅이 제일 맛있냐는 질문엔 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질문을 받게 된다면 흠.. 지금 마시고 싶은 커피 맛을 가장 잘 살려주는 로스팅이 최고지 않을까?라고 대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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