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시다모 G2
보름 전만 해도 낮에 밖을 거닐면 땀이 뻘뻘 흘렀는데, 요샌 가디건 없이는 썰렁함을 견딜 수 없는 날씨가 되어 버렸습니다. 존재감 없던 가을이 훌쩍 찾아와서 그런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투명하게 차가운 맑은 가을 아침 공기는 또, 반갑더라고요. 출근길에 꼭 한 손에 챙겼던 아이스커피는 이제 잠시 안녕하고 오늘은 찬장에서 핸드 드리퍼를 슬쩍 꺼냈습니다. 요맘때쯤 되면 붕어빵처럼 은근슬쩍 생각나서 한 봉지씩 사 오는 커피가 있거든요.
지난주쯤 퇴근길에 집 근처 로스팅 카페에서 잘 구워진(풀 시티) 에티오피아 시다모 한 봉지를 업어왔습니다. 에티오피아 커피 유명하죠. 예가체프가 대표적이고요. 한 번쯤 드셔 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에티오피아 원두는 신맛이 특징이라 사실 한창 여름일 때 얼음과 함께 마시면 립톤 아이스티보다 더 청량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다모는 예가체프의 사촌뻘이에요. 맛도 대충 비슷하고요. 근데 가을 아침과는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 시다모를 제가 굳이 찾아 마시는 이유는 에티오피아 원두이지만 고소하게 구워도 그 맛이 아주 균형 잡혀 있는 재미난 원두이기 때문입니다.
예가체프는 보통 미디엄 로스팅을 합니다. 호박고구마를 구웠을 때 나는 농익은 구수한 맛에 화려한 꽃향과 강렬한 시트러스가 더해진 커피죠. 시다모도 미디엄 로스팅일 땐 비슷한 맛이 납니다. 특징이 있다면 아이스티 같은 예가체프의 신맛과 다르게 프랑스산 레드와인의 진한 신맛이 나는 점이죠.
하지만 저는 미디엄 로스팅 시다모를 사지 않아요. 좀 더 구운 풀 시티(다크로스팅 직전)까지 구운 놈을 데려옵니다. 시다모는 구우면 구울수록 향이 죽지 않고 유지되면서 신맛은 죽고 단맛이 올라오거든요. 그럼 와인처럼 진했던 신맛이 맑고 산뜻, 상쾌 신맛으로 변하면서 마치 노란 국화 두 송이를 띄운 꿀물 같은 맛이 납니다. 요즘 같은 날 따끈하게 내려 머그잔에 따라 한 모금 마시면 정말 가을 아침 같은 맛과 향기 때문에 기분이 좋더라고요.
품종의 특성상 카페인 함량이 적어서 하루 종일 홀짝홀짝 마셔도 부담이 없는 것도 좋습니다.
에티오피아(산지) 시다모(세부 산지) G2(등급- 1,2,3으로 나뉘는데 사실 별 의미는 없어요 그래도 3은 좀 찝찝하니깐 ~) 풀 시티(구운 정도) 근처에 스페셜티 로스팅 카페가 있다면 꼭 한 봉지씩은 구비가 되어 있을 겁니다. 은근 찾는 분들이 계신가 봐요. 온라인 구매를 하면 더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이 사진 마세요. 꼭 붕어빵처럼 자주 마시다 보면 물리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