쩍벌, 그 이유를 찾아서
지하철을 타다보면 화가 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옆 사람의 쩍벌이다. 안 그래도 좁은 자리인데, 옆 사람이 눈치없게 내 자리를 침범하면 화가 나는건 당연지사다.
여기서 한번 각자의 경험을 떠올려보아라. 참 신기하게도, 모두 남자였을 것이다. 본인은 정치적인 이해 관계가 없으며, 최근 유행하는 성별 대립에 대한 의견도 없는 사람이다. 그저 나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한 뇌피셜일 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지하철에서 다리를 벌리는(흔히 쩍벌) 분들은 일반적으로 남자다. 물론 여자도 그런 경우가 있겠지만 극히 예외의 경우다.
의문이 들었다. 왜 남자는 비좁은 자리에서도 다리를 벌리는 것일까?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경우인가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영어 단어 중에도 manspreading(우리 말로 하면 ‘쩍벌남’) 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다. 즉, 남자가 다리를 벌리는 건 특수한 문화에서만 볼 수 있는게 아니라, 전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어찌보면 다리를 벌리고자 하는 욕구는 DNA에 내재된 것이며, 남자로 자라면서 점점 발현되는 중요한 특징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왜 그런걸까? 나는 여기에 대한 답 - 엄밀히 얘기하면 답은 아니고, 내 뇌피셜 - 을 ‘진화’에서 찾았다. 석기 시대부터 남자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사냥을 해야 했다. 때로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전쟁도 무릅써야 했으며, 내 삶의 터전을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삶을 살았다. 나의 구역을 넓히는 것은 욕망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였다. 내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확장시키지 못하면 내 자리는 위태롭게 될 것이다. 즉, 자리 싸움은 남자에게 있어서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는 매우 중요한 투쟁이었다.
이 습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을 수 있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다리를 벌리는 걸지 모른다. 나의 자리를 확장하기 위해. 나의 자리를 보장받기 위해. 쩍벌이 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든, 이 행위를 옹호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타고난 본능에만 이끌리진 않는다. 본능에만 의존하여 살아가는 존재를 짐승이라 부르며, 인간은 본능을 억제하고 조절하도록 사회화 되어 왔다.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남자의 쩍벌은 진화의 결과일지 모른다. 그리고 쩍벌을 컨트롤 하지 못한다면 사회화가 덜 된 걸수도 있다. 부디 다리는 오므려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