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몇 개월 일하다보면 내가 읽지도 않은 책을 꽤나 많이 알게 된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세상엔 있어야 할 책도 많지만, 결코 있어선 안 되는 책도 꽤나 많다는 것이다.
그런 책은 보통 청구기호 370번대에 있다. 370번대 책은 한국십진분류표(책을 나누는 기준표)에 따르면 '교육학' 서적이다. 우리는 보통 교육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동심리학, 교육심리학, 교육철학과 같은 이름을 떠올린다. 이러한 책은 아이와 청소년의 행동 및 심리적 특성을 분석하거나, 그들의 발달 특성을 분석하여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 학문이다. 세계 각국의 교육자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하지만 이런 책은 얼마 있지도 않거니와, 잘 빌려가지도 않는다. 보통 빌려가는 책들은 교육학이라는 분류가 부끄러워지는 책들이다. 대원외고 100% 합격전략, 우리 아이를 0.1%로 만드는 공부법, 서울대학교를 부르는 자기소개서, 14시간 공부해라, 이런 책들이다. 이 책들은 부모라는 교육자를 위한 책도 아니고, 아이라는 피교육자를 위한 책도 아니다. 아마도 부모와 학생의 중간쯤 위치한, 부모도 아닌 학생도 아닌 자들을 위한 책이다. 이들은 자식이라는 존재에 부모의 욕망을 담은 자들이다. 아이를 파괴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들이다.
이런 책들은 참 인기가 많아서 표지와 속이 모두 너덜너덜해져있다. 보통 책을 꽂을 때는, 책이 낡아있으면 그 책이 주는 교훈이 뭘까 추측하며 나중에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호기심을 갖는다. 하지만 위 책들의 너덜너덜함은 오로지 누군가의 욕망에서 시작되어, 어린 누군가의 고통과 불행으로 완성된 것만 같아 무서울 지경이다. 책이 너덜너덜한 것만큼이나 어린 누군가의 일상도 너덜너덜하지 않을까. 가끔씩은 책을 엉뚱한 곳에 꽂아서 이런 악순환을 끊고 싶단 생각도 하지만, 용기가 없어 그러지는 못하고 있다. 그저, 이름도 모를 누군가의 아이가 겪어서는 안될 압박과 고통을 상상하며 미리 애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