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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ㅈ가 Jul 18. 2020

치아 교정과 라섹을 하며 느낀 것

내 것이 줄어들고 있다.


최근에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 치아에 가지런히 펼쳐진 철사는 치아를 열심히 흔들며 새로운 자리를 잡아간다. 허나 흔들리는 건 치아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흔들리는 치아만큼이나 여러 불안감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 세계 교정러들은 비슷한 고민을 한다. 과연 내 치아는 안전할 수 있을까? 수 십년간 끊임없이 검증되어온 치의학 기술이지만, 내가 혹시나 예외 케이스는 아닐까 두려움에 떨기 마련이다. 혹시나 10년 뒤에 나의 사례가 교정학 교재 부작용 사례에 실리진 않을까, 나 때문에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는건 아닐까, 꽤나 많은 것이 두렵다.


이러한 두려움을 느끼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 것’ 에 대한 개념이 흔들려서 그렇다. 우리는 수 십년간 내 신체는 나의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작동 원리는 잘 모르더라도, 내 몸을 가장 잘 아는건 본인이었으며, 내 몸의 주인도 나였다. 그러나 이 생각은 교정을 시작하며 흔들리게 된다.


2년간 내 치아는 전적으로 의사에게 맡겨진다. 물론 치아가 의사에게 맡겨진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신경치료, 사랑니 발치, 스케일링 등 무수한 공포의 순간을 거치며 어떻게 하면 내 치아를 더 잘 맡길 수 있는지 배워왔다. 그러나 교정은 얘기가 조금 다르다. 사랑니 발치가 100m 달리기라면, 교정은 국토 종주 마라톤이다. 2년 이상 맡긴다는 게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다. 게다가 한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는 레이스다. 그 순간부터 이 치아는 더 이상 내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5년전 라섹 수술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각막을 깎아서 시력을 회복했다. 7살의 나이에 2.0 이라는 시력으로 세상을 보았던 건 분명히 내 눈이었다. 그리고 19살의 나이에 0.1 이라는 퇴화된 시력을 기록한 것도 내 눈이었다. 좋았을 때도 내 것이었으며, 나빠진 것도 내 것이었다. 그러나 5년 전 다시 좋아진 눈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자연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움직인다. 내 시력도 마찬가지로 2.0이라는 질서에서 0.1 이라는 무질서로 올바르게 움직였으나, 5년전 다시 질서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즉, 내 눈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다.



내 몸에서 자연이 아닌 것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내 치아도 그렇고, 눈도 그렇다. 이런 부위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당당히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부위도 사라지게 된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의 경계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


사실 이런 고민 백날 해봤자 도움되는 건 전혀 없다. 이미 시작한건데, 좋은 점만 생각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자기 전에 인공 눈물 넣고 양치나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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