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야말로 시작일지니
넘어진 액자를 응시하다, 마치 살아 숨쉬는 일이 이토록 버거운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저만치 살아있던 사람도, 하나의 사진으로만 남고서,
잘도 꼬꾸라져 넘어져 가는데.
살아있는 나는 뭐가 그리 대수라고 자구하며 그렇게 살았나 싶다.
평범하게 사는 것.
아마 세상에서 가장 쉽다고 치부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니.
그는 가난했지만, 긍지를 잃지 않는 사람이였다.
남루한 옷차림에도 행실을 언제나 올곧았으며,
굽어진 허리보다도 무섭게 현명했다.
오죽했으면, 숨이 넘어가기 직전 조차도 내게 사랑을 표하는게 아닌,
정도 있게 타인을 대하고서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길 바랬으니.
비로소 그 순간에서야 꺠달았다.
존재의 의미가 아닌, 죽음의 의미를.
또한, 보통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마무시한 지혜를 요구하는지도.
그를 떠나보낸 이후로, 종종 이런 상념에 빠지곤 한다.
이토록 인간은 가벼운 존재인가.
쉬이 멀리 떠나버리는게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 것 부터
하나의 죽음으로 수 없는 품평이 나오는걸 바라보고 있자니
내 마음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 또한 하늘의 별 따기 같다.
어찌하면 그토록 평범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가.
일상의 충만을 비로소 하루에 넣은 자들은 얼마나 부러운 이들인가 하며.
다만 애석하게도,
그의 바램과 나의 삶은 같은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았다.
그의 조언대로 여태껏 지키면서 살아가려 노력했던 타인에게 배푸려 했던 사랑은, 누군가에겐 자기 기만으로 들리거나, 정도있게 대한 행동은 누군가에겐 속이 비치는 계산으로 받아들여 곡해됐으니.
세상 사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가 싶어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수록 그의 말을 곱씹으며, 나의 노력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세상을 대하는 기준이 아직 제대로 서지 않았던 것인지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그리곤, 나만의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가를.
모두의 삶이 다르고, 모두의 죽음 또한 다르겠지만,
적어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기본과 틀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의 죽음이 내게 말해주었다.
그 기본은 거창한 신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틀 또한 세상을 설득할 만한 답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죽음 앞에 섰을 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태도.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끝내 붙들고 갈 수 있는 방향.
나는 이제 그를 통해 남겨진 그 기준을 품은 채
나의 올바른 죽음을 향해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