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통이다. 처절하게 그렇다. 언제 써놓은지 모를 이 메모의 뒤를 어떻게 보탤지 몰라 한참을 내버려 뒀다. 취해서 써놓은 건지 페스트를 읽고 나서였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이방인을 읽었고 연달아 시지프 신화를 읽고 나서야 보태서 적어보려 한다.
사실 너무 어려워 온갖 욕지거리와 함께 책을 덮기 일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딱히 승부욕은 아니었다. 지금 이걸 포기하면 뭔갈 놓칠 것만 같은 설명 불가한 느낌이었다. 삶과 부조리와 자살에 대한 책이라니 평소에 관심 있었던 주제라 그런가. 그래도 너무 읽기 힘들었다.
잠시 책을 덮어두고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조금 읽어봤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어려워하더라. 댓글을 대충 훑어보는 도중 어느 댓글에 시선이 멈췄다.
"이 책은 제게 성경과도 같아요..."
아무 말 대잔치 같은 이 책이 뭐라고 성경이라고까지 하는 건지 초반만 살짝 읽다 멈췄던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잔뜩 사놓은 오스카 와일드의 책을 읽고 싶은 욕구를 참고 다시 이 난서를 꾸역꾸역 읽었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가 이렇다면 나는 늘 부조리를 슬퍼했다. 나에게 당연한 게 모두에게 그렇지 않을 때마다 당황했다.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을 보고 듣고 겪을 때마다 숨이 막혔다. 죽음 말고는 공평한 게 없는 세상에 분노했다. 그밖에 열거하기도 벅찬 부조리의 순간들을 접할 때마다 무력함을 느꼈다.
카뮈는 이런 부조리함에 무력함을 느끼고 포기하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란 걸 알았다. 겸허히 삶이란 이런 것이다 하며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거야말로 삶 자체를 분명하게 만들어준다 하였다. 고통 없는 내세의 희망 같은 건 개소리라며 현실을 마주하라고 우리 모두 언젠간 죽을 수밖에 없으니 도망치지 말고 현생을 치열히 살아가자고 역설한다.
그는 어떤 해결방안을 내놓지 않는다. 작가 본인도 무대 위의 배우 중에 한 명일 뿐이니 말이다. 위로해줄 뿐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했다는 존재할 뿐인 것과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는 말이 생각났다. 기왕 존재하게 된 거 삶을 명확히 바라보고 살아보자는 카뮈의 글은 다 읽고 나서야 따뜻하게 느껴졌다.
난해했던 건 내 수준이 낮아서 그랬을 뿐. 결론은 따뜻한 책(부족한 이해지만...)이다. 다만 난 부조리를 직시하게 됐지만 맞붙을 수 있는 상태까지 올라가진 못했다. 나는 내 일상도 소화하기 버거워한다. 언제 서야 나는 이 부조리들에 당당히 맞서 싸울까.
아아 솔직히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