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by 김감감무


예전부터 자주 가던 한 바가 있다. 괄괄한 듯 시원시원하신 멋쟁이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지하의 아주 작은 곳이다. 복고풍이 유행하는 요즘 옛날의 분위기를 재현해 너도나도 내놓지만 인위적인 느낌이 들어 못내 아쉬웠다. 진짜배기가 어디 없을까 찾아 헤매다 알게 된 곳이다. 집에서 멀어서 자주 가진 못했지만 갈 때마다 좋았다. 7080의 명곡들이 계속 나오고 멸치와 김, 과자를 먹으며 싸고 맛있는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가장 나다운 게 세계적이라고 누군가 했던 거 같은데. 이곳은 그냥 하던 대로 해온 건데 오리지널 복고풍이 됐다.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게 진짜 멋이라는 걸 이곳에 갈 때마다 느끼곤 한다.


좀 이른 퇴근을 한 어느 날 술이 고파 오랜만에 찾아갔다.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제냐는 사장님의 질문에 작년에 여자 친구와 왔었다 했다. 이번엔 왜 혼자냐는 예상한 질문이 날아왔고 헤어졌다 답했다. 사장님은 특유의 걸걸한 화법으로 위로해 주셨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손님 중에 한 아저씨는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가게의 오랜 단골인듯한 그분은 조심스레 내 나이를 물었다. 워낙 작은 술집이라 부대껴 앉을 수밖에 없다 보니 자연스레 옆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는 곳이다. 올해 서른이라는 말에 부럽다느니 아직 한창이라느니 으레 할법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최근에 이별하셨냐 묻고는 슬퍼하지 말라 했다. 슬프지 않고 최근 아니다 좀 됐다는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나도 모르는 내 슬픔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는 흔들리는 초점으로 날 바라보며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떠난 사람 때문에 아파하지 말라고, 내가 잘 나가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나름의 위로를 해줬다. 본인 시계와 여성편력을 자랑하지만 않았으면 감동받았을 순간이다. 잘 나가면 돌아온다는 말은 내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여자가 돌아온다는 건데. 그럼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돈 때문에 돌아온다는 거 아닌가. 그의 연애사가 대충 짐작이 갔다. 듣는 이 없는 위로는 계속 이어졌다.


나름 진심을 담은 위로였겠지만 달갑지 않았다.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취한 이에게 인상을 구겨봤자 귀찮은 일만 생긴 다는 걸 서비스직 경험을 통해 빡세게 배웠기에 웃으며 대응했다. 바라지 않은 위로를 받을 때면 속이 차가워짐을 느낀다. 상대가 귀찮고 위선적(나만 그럴지도...)으로 보인다. 타인을 공감하는 게 과연 가능하실까 하는 짓궂은 의문까지 들게 된다.


다섯 잔까지만 파는 게 가게의 룰이고 늘 그만큼을 채우던 나였지만 그날은 네 잔에 일어났다. 가려는 내게 다른 손님들까지 힘내라고 위로를 던졌다. 진짜 괜찮다는 내 자기변호는 취한 목소리들에 묻혔다. 뒤돌아서는데 손에 닿는 딱딱한 종이의 촉감이 느껴졌다. 보지 않고도 명함임을 알았다. 아저씨는 힘내라는 말을 거듭하며 명함을 줬다. 사람이란 참 복잡한 존재다. 백 세 인생에 삼십까지 살아왔으면 사람을 좀 이해할 줄 알았다. 타인은 내게 늘 혼란이다.


그곳을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정이 그리워서인가 싶었다. 생면부지의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 술잔을 부딪히고 왁자지껄 떠들며 같이 노래를 듣고 부르며 울고 웃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웃 간의 정이나 넉살 등을 말이다. 내게는 버거웠던 그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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