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뵙겠습니다.
농구를 처음 하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체육시간이었다. 그 또래 남자애들이 흔하게들 축구에 미쳐있던 것과는 다르게 난 흙 위에서 뛰고 넘어지는 게 너무 싫어서 축구에는 흥미가 없었다. 깨끗한 체육관과 공을 튀길 때 울리는 바닥 소리, 던진 공이 그물을 깔끔하게 통과할 때 오는 쾌감 때문에 난 농구가 좋았다.
끼리끼리 논다고 원래부터 친한 친구들마저도 나와 동시에 농구에 빠지게 됐고 우리는 농구에 미쳐갔다. 학교에 가면 교실이 아닌 농구 코트부터 찍고 슛을 던지다가 교실에 들어갔고 점심시간에는 허겁지겁 맛도 모르고 밥을 먹고 나와서는 선배들에게 자리를 뺏길까 봐 얼른 농구공을 들고 골대로 달려갔다. 종종 허탕을 치긴 했지만 그런 모습을 선배들도 봤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다 같이 시합을 하게 됐다. 흙이 싫어서 축구를 안 했는데 정작 점심시간에 하는 농구는 흙 코트였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농구에 미쳐서 살다 보니 실력도 어느 정도 올라왔고 동네 코트에 가면 농구 좀 한다는 사람들과 안면도 트고 교류하면서 우린 소위 동네에서 농구 좀 하는 애들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 우리는 고3이 됐고 성인이 됐다. 나는 대학 진학은 하지 않고 군대에 갔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갈수록 농구공을 만지는 일은 줄어들었다. 군대에서 농구로 포상을 딴 게 늘 자랑거리이긴 했지만 거기서 더 성장을 이루지는 못했다. 일상을 소화하기도 버거워 연습은커녕 농구공을 만지는 일도 거의 없었다. 종종 코트를 지나가는 일이 생기면 괜히 뽐내고 싶어서 초보자들 상대로 양학을 하곤 했지만 그게 더 독이 됐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내가 농구를 여전히 잘하는 줄 알고 살아갔다.
긴 공백기를 마무리하고 최근에 다시 농구를 시작했다. 꾸준히 농구를 해온 친구들과의 격차는 충격적이었다. 자신 있었던 공격은 한 두골 넣기도 힘들었고 수비는 지역방어의 변화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민폐만 끼치기 일쑤였다. 친구들은 퇴물이다, 최약체다 놀렸고 나는 웃으며 받아줬지만 속으로는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꾸준히 농구를 해온 친구들은 닿을 수 없을 만큼 성장해있었다.
농구를 다시 하고 나서는 매번 화만 잔뜩 나서 집에 돌아왔건 것 같다. 과거의 영광은 내 기억 속에서 더욱 미화됐고 현재의 나는 너무나 초라했다. 친구 중에 제일 잘하는 놈이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둘이서 연습을 하자고 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이 농구를 시작했지만 여러 대회에서 수상 경험도 많고 아마추어에서는 나름 유명한 녀석이다. 친구는 내게 제일 기본자세부터 다시 알려줬다. 공을 받을 때, 잡고 있을 때, 없을 때의 자세들로 나뉘는데 결국 자세를 낮추라는 것이었다. 정말 기본적인 것이었다. 자세를 낮춰야 하체 힘을 받아서 슛을 바로 쏠 수 있고 돌파를 바로 할 수 있다. 자세를 낮추는 것에서 모든 게 시작이었다. 동영상 촬영을 해가며 내가 그간 하던 자세들과 고친 자세들을 비교해봤다.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기본부터 놓칠 정도로 농구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래 놓고는 초보자들 상대로 양학이나 하며 내가 여전히 잘하는 줄 아는 겉멋만 든 채로 살아왔던 게 부끄러워졌다.
친구들과 종종 농구 얘기를 할 때면 친구들은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늘 자신의 문제점이 어떻고 뭘 연습해야 하는지를 말했다. 나는 그거 별거 아냐~라며 내가 잘했던 기억에 갇혀서 말하곤 했다. 친구들은 꾸준히 공을 만지며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내며 성장해왔다. 친구들 보기에는 그저 우물 안에서 개골 거리는 걸로밖에 안 보였을 텐데 또 부끄럽다.
꾸준히 닿아있어야 성장한다. 꾸준하면 자신이 부족한 걸 알게 되고 고치려고 노력하다 보면 성과를 이룬다. 흔해빠진 말인데도 실천하지 못했다. 자만과 나태에 빠져서 현실을 몰랐던 것이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내가 믿던 것을 부정당하는 데서 오는 충격은 상당하다. 도움이 필요했지만 그것마저도 자존심이 상했다. 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성장하고 싶다. 비단 농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언젠가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고 좋은 아들이자 형이고 싶고 좋은 남편,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운동을 통해 성장하는 태도를 쌓아가게 되고 도움받을 용기를, 현실 직시를 배우게 된 요즘이다. 좋은 태도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성장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모르겠지만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서 좋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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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일기를 쓰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이 첫 번째 글이었는데요. 지금 보니 상당히 엉망징창이네요. 그럼에도 브런치 합격하면 이걸 가장 먼저 올리자 생각했었습니다. 과정이 주는 즐거움은 시작부터 함께해야 온전히 즐겁잖아요. 원석이 다듬어져 가는 과정을 같이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