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돈이 좋긴 좋아”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같이 공연을 보러 온 그의 동행인 여자에게 뱉은 첫마디였다. 이 자리를 앉기 위해 돈을 좀 썼다는 뜻이 들어있는 그의 말은 사실이긴 하다. 뮤지컬 티켓은 가격이 좀 나가는 편이니까. 그럼에도 그런 말을 할 정도의 돈이고 자리인가는 의문이었다. 특별히 좋은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연장 자리의 특성상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렸고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여자에게 자기 집안의 재력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두루뭉술하게 처리하는 그의 화법과 손목에 걸려있던 싸구려 시계가 들리고 보였다. 아직 연인은 아닌듯한 동행의 그녀는 속된 말로 홀라당 넘어가있어 보였다. 함께하는 미래를 가정하는 농담을 뱉던 그녀의 저의에 있는 것은 알 것 같으나 알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의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 마냥 오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유혹적으로 들었다. 쇼츠 영상만 보고 전체 공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이지 않는가라며 의식을 다잡아보아도 거슬렸다.
그러다 문득 썩은 나뭇가지 하나가 온 나무를 썩게 만드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작은 부패가 거슬러 올라가 더 굵은 가지와 몸통, 뿌리까지 해서 전체를 썩게 하는 이미지였다. 그가 정말 부유한 집안의 자재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내가 빠진 공상과는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하나의 단면이 주는 인상이 전체에 끼치는 영향, 그것이 판단의 근거 혹은 재앙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런저런 망상이었다.
불편한 내색을 살짝 보이니 조용해진 그는 공연이 시작되자 더욱 그렇게 됐다. 내가 자신보다 왜소했더라도 과연 얌전히 조용해졌을까 싶다. 언젠가 쓰게 될 소설의 소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상한 방식으로 고마웠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