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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감감무 Jul 12. 2024

왜 소설

집 앞에 있는 카페에 자주 간다. 점장님부터 직원들이 전부 중년 여성분들로 구성된 곳이다. 나의 적극적이진 않지만 낯가리지 않는 성격과 그분들의 연륜과 서비스 정신의 합이 좋았던 걸까. 나는 갈 때마다 직원분들, 점장님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중 내게 유독 친절했던 한 분은 갈 때마다 휘낭시에나 쿠키 같은 디저트를 서비스로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 많이 주시곤 했다.

그분이 퇴직하신다길래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을 퇴직 선물로 드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직원은 소설보다는 다른 장르를 읽는 것이 낫지 않냐고 말했다. 한때 책 만드는 일을 했다는 그녀는 소설보다는 지식이나 정보가 담긴 책을 읽는 게 남는 게 있으니 그런 쪽을 읽어보라 말했다.

나의 낯가리지 않지만 적극적이지는 않은 성격은 그녀에게 ‘무언가 남길 바라며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나요‘라던가 ‘소설이 남기는 게 왜 없나요’라고 따져 묻는 귀찮음을 무릅쓰지 않았다.

아니다. 귀찮음이란 핑계를 앞세웠을 뿐 나는 내가 왜 소설을 읽는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래서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소설은 남는 게 없다는 뜻이기도 했던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책을, 왜 소설을 읽냐는 질문을 종종 받지만 매번 이런 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의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소설이란 추체험의 기록, 있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도식, 구제받지 못한 상태에 대한 연민, 모순에 대한 예민한 반응, 혼란한 삶의 모습 그 자체. 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의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일뿐.’

그의 소설 쓰기는 인생에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이었다. 주목받을 일 없을 이들에게 주목하는 일이었다.

소설 쓰기가 그렇다면 읽는 사람도 그렇다. 읽어야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은 구별되지 않는다. 읽는 모두가 소설가가 되진 않지만 읽는 사람은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쓰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은 결국에 구별되지 않는다.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은 삶을 주목하는 일이다.

언젠가는 이렇게 좀 멋들어지게 대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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