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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후감

프란스 드 발, 『침팬지 폴리틱스』

by 김감감무

운 좋게 얻은 지위에 취해 폭정을 일삼던 정치 경험이 없는 힘만 센 지도자가 능구렁이 같은 정치 고수와 남모르게 힘을 키워온 신흥 세력의 결탁에 자리를 빼앗기는 정치 드라마는 역사에서 늘 되풀이 되어왔다. 이런 정치 행위는 인간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자는 정치 행위가 인간의 역사보다 오래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 “정치인을 힐난하기 위해 침팬지를 들먹거리는 언행은 선배 정치가인 침팬지에 대한 일종의 모욕이다.”라고 적었다. 실제로 최근 이와 비슷한 오해를 하고 이 책을 인용한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에 대해서 “대통령과 특정 정당에 대한 조롱이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저자의 의도와 상반되는 일이다. 책을 읽지 않아 생긴 오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침팬지와 인간의 정치 행위의 유사성을 통해 정치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책이지 침팬지와 인간의 위상을 끌어올리거나 내리기 위한 책이 아니다.

책을 읽다 보면 침팬지와 인간과의 비교가 최대한 자제되어 있는데도 자연스레 그간 봐온 정치인들의 이런저런 장면이 떠오른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사성에 대한 무의식적 동의였지 않을까.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수놈 세 마리의 권력 교체 과정에 대한 부분이었다. 침팬지와 인간 사이의 명확한 소통의 불가능으로 인해 관찰자의 입장에서 기록될 수밖에 없는 약점을 지닌 저자는 이것을 수없이 쌓아온 관찰 데이터로 메꾸려 한다. 그럼에도 간략하고 깔끔한 도표들이 적절하게 들어있어서 지루해지지 않는다.

권력과 성적 특권의 상관관계가 침팬지들의 관찰 결과에 따르면 필수적으로 언급되어야만 한다지만 이 부분부터는 좀 흥미를 잃은 것 같다. 책의 중심과 그리 벗어난 부분은 아닌 것 같은데도 그냥 개인적으로 좀 부담스러웠다고 해야 하나. 그냥 좀 그랬다. 그럼에도 재밌는 지점이 더 많은 책이었다. 짧게 다루어진 침팬지 사이의 입양이라던가 화해 및 소통하는 방식이라던가 하는 것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은 이제 정치는 동물적 행위라는 말로 바꿔서 써야 하지 않을까. 정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많아진 시기다. 다만 이러한 관심의 근원에 있는 것이 불안이라는 건 슬픈 일이다. 이러한 시기에 이 책이 가져다줄 정치의 기원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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