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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후감

이승우, 『심인 광고』

by 김감감무

이 소설집의 첫 작품 「사령」의 주인공은 회사의 명으로 사회라는 곳에 발령받는다. 그러나 사회는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가는 길이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사회를 향해 간다. 가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외의 말은 듣지 못했으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회를 향하는 것뿐이다.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를 곳을 향해 가야만 하는 주인공의 처지는 카프카의 「황제의 칙명」이 생각나게 한다.

길 위의 인생이라 했던가. 인생이 길 위에 있다면 그 어디에도 집이란 없다. 집이라는 관념만 존재할 뿐, 여정만이 계속된다. 열쇠가 안 맞아 집에 들어갈 수 없거나 유배지마냥 쫓겨난 듯 머물러 있거나 떠돌아다니는 작품 속 인물들은 한 인물의 변주처럼 보이기도 하다. 이들은 정착하지 못해 부유하고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내고만 있다. 언젠가는 이곳을 벗어날 희망만이 그들을 버틸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황제의 칙사가 결코 칙명을 전달할 수 없듯이 그들의 희망은 가망이 없다.

이승우는 광야로 인간의 운명을 표현한다. 광야에는 길이 없다. 오로지 모래뿐이다. 가나안은 언젠가 도달할 곳으로만 존재한다. 박 중사의 죽음으로 삶을 견딜 수 없게 된 황통은 사라진다. 주인공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모래를 느끼며 「객지 일기」는 끝난다. 길 위의 인생이자 광야 위의 인생이라는 것을 작가는 일관되게 말한다.

카프카뿐만 아니라 종교와 신화의 오마주가 여럿 등장해서 좀 어려웠지만 그것을 최대한 현실로 끌고 와 풀어보려는 작가의 내공과 고뇌가 무척 인상 깊었던 소설집이다.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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