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길고 짧음이 읽기의 난이도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글이 짧으면 읽기 쉽다는 착각은 만연하다. 그러나 『이방인』이 그러한가. 『팡세』는 또 어떤가. 제목에 아예 단상이 들어가는 『사랑의 단상』 또한. “투명해질수록 난해해지는 문장.”이라는 구절에는 작가 또한 자신의 단상 모음집이 그리 친절하게 읽히진 않을 거라는 예감이 담겨있다. 그의 문장은 파편적이고 읽기 버거운, 어두운 길을 벽에 손을 짚어가며 나아가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렇게 써야만 하는 것, 읽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쉽게 읽고 쓰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보기 힘든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일 때가 있다.
예언가로부터 진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찌른다. 눈으로는 진실을 볼 수 없었다. 진실은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 있다. 단상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만든 이 책에 담긴 것은 보기는 힘드나 진실적인 어떤 것이다. 난해함을 파헤치고 도착할 곳에서 작가는 ‘은둔기계‘, 즉 은둔의 가치를 말한다.
좋게 읽었지만 '은둔'에 대한 생각보다는 텍스트의 친절함이냐 투명함이냐를 더 고민하게 됐던 책이다.
어떤 고민은 고민으로 계속 남는다. 근데 그게 그리 안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건강한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