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이라는 단어부터 얘기해야겠다. 미국의 상류층 자제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의 제목에 파수꾼, 그것도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말은 거리감이 느껴진다. 거리감의 정도가 아니라 대비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책에는 밭과 닮은 것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호밀밭은 무언가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그 무언가를 지키는 일을 하는, 하려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대부분이 뉴욕에서 진행되는, 밭과 닮은 것조차 등장하지 않는 이 이야기에서 호밀밭이란 무엇일까.
책은 이 학교 저 학교 떠돌던 반항아 홀든 콜필드가 마지막 학교에서 또 한 번의 퇴학을 앞두고 가출해서 뉴욕을 삼 일간 떠돈다는 짧고 단순한 구성의 술술 읽히는 이야기다. 성인인 내가 보기에 주인공이 겪은 사건들은 대단한 비극이나 시련으로 보이지 않았다. 고작해야 힘 센 친구에게 조금 얻어 맞고 밤새 술을 마시고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포주와 창녀에게 돈 좀 뜯기고 말뿐이다. 별거 아닌 사건으로 생각하게 되는 나는 홀든의 입장에서는 이미 호밀밭 바깥, 세상의 때가 잔뜩 묻은 사람인듯하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서서 세상에 실망하게 되는 사건들을 자꾸만 겪게 되는 홀든은 '죽고 싶다', '우울하다'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는다. 그의 세상에 대한 실망, 좌절을 공감하지 못했던 나는 나이마다 사람마다 중요한 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생각지 못한 '꼰대'였다.
이 책이 슬픔을 주는 방식의 색다름이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읽는 이가 호밀밭이 상징하는 순수함이나 동심에서 멀어져있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는 것, 홀든에게 몰입하면서도 거리감을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에서부터 오는 슬픔이었다. 엄청나게 사랑받는 고전인 걸 보면 내가 느낀 슬픔은 인류 보편적인 것이었지 않을까. 싱클레어에 비하면 좀 '양끼'가 있지만 더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홀든은 사랑하지 않기 힘든 캐릭터였다. 내게도 있었던 시절을 이제는 공감조차 잠깐 못했을 정도로 잊고 있었다니, 정말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