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아주 오래된 논의가 있다. 논의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게 정설 아닌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이어트’라는 건강한 목적을 ‘무작정 굶기’라는 잘못된 수단으로 이루면 안 되는 것처럼.
어쨌든 이 소설은 묻는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악한 수단을 용인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백성수라는 예외를 좀 둬도 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묻기보다는 그래도 된다고 작가는 소설 속 인물 K의 입을 빌려 말한다.
공감이 전혀 안 간다. 그럼에도 좋았다. 정확히 몇 살 때 읽은 건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 소설은 내 인생 첫 소설이다. ‘만화로 읽는 현대문학 전집’에서 만화로 처음 봤다. 거대한 불 앞에 서있는 백성수의 뒷모습을 그린 장면과 그의 광기만 어렴풋이 기억나고 나머지는 다 까먹어서 언제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다,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도서관에 있길래 반갑게 집어 들었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강렬하고 간결하다.
공감이 가고 안 가고는 소설의 재미와 그리 상관없는 걸까. 목적과 수단의 관계보다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