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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후감

이승우, 『지상의 노래』

by 김감감무

박부길이 겪었던 중지도에서의 치욕은 다른 이승우의 문학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군대와 정치, 권력과 공권력으로부터의, 지상의 추악함과 몰인간적인 것으로부터의 폭력으로 확대돼서 나온다. 그것은 몸 때문에, 지상의 것들 때문에 겪어야 하는 치욕이라고 표현된다. 이 책은 그 치욕의 알레고리다.

천산 공동체라는 특정한 믿음을 공유하는 기독교 단체에 대한 추적과 이야기가 작품의 중심이다. 천산을 중심으로 둔 여러 결의 이야기는 정처 없이 헤매는 듯 하지만 결국에는 천산으로 모인다. 몸을 벗어난, 인간을 벗어난 것을 바라보며 살던 이들조차도 겪어야 했던 몸의 치욕. 천산의 형제들은 죽음으로써 마침내 찾아온 휴식을 맞는다. '카타콤'이 아닌 '체메테리움'으로써의 천산에 자리한다.

말씀이 이 세상에서 무력한 이유가 저세상에서 유효하다는 증거라는 한정효의 말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담겨있다. 이곳에서 무력하게 겪어야 했던 치욕들은 내세를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는 믿음이다.

유독 씁쓸하면서도 다른 작품들에 비해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책이다. 그렇지만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너머의 세상이나 믿음보다는 이곳의 고통을 다루는데 집중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것은 그의 습관 혹은 태도와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교인 내가 그의 문학을 거부감 없이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한 무엇이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어딘가에서 했다던 “나를 향해서만 소설을 쓴다, 내가 유일한 내 독자”라고 했던 말을 사과한다. 요즘은 독자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는, 근데 독자와 나의 얼굴이 아주 닮은 것을 하고 있다는, 독자가 나 같다는 말을 한다. 그는 독자에게서 자신을 본다. 나는 작가의 작품에서 나를 본다. 이 육체의 치욕과 영혼의 휴식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에서 나는 언젠가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보기 때문에 자꾸만 그의 책을 읽는 것 같다. 읽었고 읽어나가는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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