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장편과는 다르게 좀 더 실험적이고 소소하고 다양한 주제를 쓸 수 있는 단편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나는 하나의 작품에 푹 빠져서 길게 몰입하며 읽는 장편을 선호한다. 그러면서 대하소설을 또 두려워한다. 장편 선호, 단편 선호는 그저 취향 차이일 뿐이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지만 단편이냐 장편이냐는 작품의 훌륭함과는 상관없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더 느낀 바다.
「지옥변」과 「덤불 속」같은 작품을 읽고 누가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지옥에 빠진 이가 그려내는 지옥, 자신의 지옥마저도 그저 그릴 뿐인 악마와도 같은 화공과 그 지옥을 만드는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인 구도를 그려낸 지옥변은 정말 무시무시하고 푹 빠져 읽게 되는 단편이다.
하나의 사실이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인해 다르게 표현되느라 진실은 멀어지는 「덤불 속」과 표제작 「라쇼몽」이 보여주는 추악함의 유행 혹은 연쇄도 인상 깊었다.
무겁고 진지하고 삶의 추악함을 보여주는 작품만 있는 것도 아니다. 엇갈린 사랑에 대한 가슴 시린 연애 소설인 「가을」은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다. 그의 다른 연애 소설들도 대개 좋았다. 배우자의 불륜이 자주 소재로 쓰였는데 그것은 좀 슬펐지만 그것을 써낸 소설 기법은 재치 있게 읽혔다.
다섯 장이 안 되는 소설들도 많은데 하나같이 훌륭하고 아름다웠다. 사놓은지 엄청 오래된 책인데 진작 읽을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