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시절 훈련 나가서 이유는 기억은 안 나지만 텐트를 못치고 장갑차 안에서 8명이 구겨져서 자야 했던 날이 있었다. 그날의 하늘은 유독 검었다. 한계를 알 수 없는 검은 하늘이 이상하게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날 나는 그 하늘을 이불 삼아 잤다.
어머니는 일터에 계시고 동생은 어린이집에 있던 시간이면 나는 온 집안의 불을 다 끄고 이상하리만치 커다래서 방석처럼 쓰던 베개 위에 앉아서 몇 시간을 앉아있곤 했다. 켜면 켜지는 인위적인 불이 싫었다. 켜지 않으면 드러나는 어둠이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그래서 편안했다. 빛이 감추는 것도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어둠이 주는 편안함을 자주 즐기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렇게 어둠에는 익숙하게 살아왔음에도 검은색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색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싶다. 그저 어떤 색은 좋고 어떤 색은 싫다는 단편적인 입장 정도야 있는 정도인 것 같다. 나는 도처에 있는 가장 익숙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한 것 아닐까. 검은색이 어둠이라는 말은 아니다. 언어와 존재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못 해봤다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 책은 저자 본인의 군 시절 밤의 추위부터 시작해서 잉크 덩어리, 적과 흑…흑인까지, 짧지만 아름답고 진한 검은색에 대한 사유를 담아놓았다. 검은색이 담고 있는, 검은색이 드러내는 것들이 있다. 언어 이전의 무언가, 평소에 생각해 보지 못한 무언가들이었다. 읽기 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늘 도처에 있는 것들이었다. 세상은 너무 밝다. 밝아서 못 보는 것들이 있다. 빛이 가리고 어둠이 드러내는 것들이 있다.
출근길에 들른 서점에서 그저 표지가 신기해서 서가에서 꺼냈고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들어봤기 때문에 산 책이다. 이 얇은 책에 하드커버라니, 의아한 책이었다. 비싸서 잘 안 할 텐데 꽤나 소중히 간직될 책이라는 예감 혹은 자신감이었던 걸까. 그럴만한 책이다. 아름답고 은은하면서도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