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후감

데니스 존슨, 『예수의 아들』

by 김감감무

출판 학교에서는 편집의 원칙을 배운다. 그렇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선생님은 과감히 원칙을 깨기를 바라셨다. 그 납득할 만한 이유라면 편집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편집자가 아니지만) 결국은 독자 지향적인 무엇 아니고는 생각할 수 없다. 원고야 이미 저자의 손을 떠났으니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편집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편집은 결국 독자를 위해서 잘 다듬는 일이다. 잘 읽히기 위한 꼴을 만드는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일관되게 삭막하고 영화 8마일에서 보았던 하류층의 삶보다 더 하류의 삶들을 비춘다.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툭툭 내뱉는듯하지만 그래서 더 순수하고 거친 언어로 소설은 일관되게 진행된다. 애초에 흐릿한 단편들 간의 구분을 더욱 살리는 편집으로-각 단편의 제목이 끝자락에 있는 것과 목차가 맨 뒤에 있는 것-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더욱 짙어진다. 일관된 잿빛.

이런 삶도 있다는 외침과도 같은 소설이었다. 문학은 상류층 샌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문학이라는 거울은 그 샌님들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지 못하던 것조차도 비출 수 있다는 것과 그래서 보지 못하던 것도 보게 만드는, 그런 기능을 충실히 하는 소설이었다.

괜찮은 소설을 뛰어난 편집으로 더 잘 살린 경우 같다. 귀멸의 칼날의 경우처럼 그냥저냥 괜찮은 만화를 너무 재밌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냈듯이. 출판 학교 선생님이 바라셨던 원칙을 부순 창의적인 편집이 이런 것이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제목이 끄트머리에 있고 목차는 맨 뒤에나 있다니. 그것을 통해 단편 간의 구분을 흐릿하게 하다니.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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