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후감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by 김감감무

나는 종종 시인과 화가를 잘못 기억하곤 한다. 예컨대 천경자나 박서보를 시인으로 기억하고 최승자를 화가로 기억하는 식이다. 시를 잘 읽지 않고 그림을 자주 보지 않은 탓이려나. 그런데 그뿐일까 싶기도 하다. 의식 위로 떠오르지 못해 표현하지 못하는 시인과 화가의 공통점을 나의 무의식이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일상의 것으로 일상을 넘어선 것을 표현하는 이들의 노력과 의지, 좌절 같은 것을 그들에게 공통으로 읽어서 나는 시인과 화가를 헷갈리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다른 점은 손에 붓을 들었냐 펜을 들었냐의 차이 말곤 없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살짝 든다.

근데 뭐 잘 모르겠다. 무식한 나는 아는 것 없이 그저 읽을 뿐이고 남길 뿐이다. 어쨌거나 시는 그리 자주 읽지 않고 그림도 자주 보지 않는다.

그런데 더욱 모르겠는 것은 청파동에서 느낀 기묘함이다. 나는 이 시집과 시인을 청파동을 지나간 뒤로 알게 됐다. 택시를 타고 지나가는 길이었다.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 눈길을 끌만한 무언가도 없는 평범한 주택가였다. 그런데도 나는 청파동을 넋을 빼앗기듯 놓고 바라보았다. 시선을 준게 아니라 붙잡혀서 다른 곳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듯한. 나의 시선은 청파동 혹은 청파동의 무언가에게 사로잡혔었다. 시인과 화가의 공통점만큼 보다 청파동의 그 무언가가 더욱 뭔지 모르겠다. 나는 무엇에 사로잡혔나. 이 시집에 담겨있는 사랑과 추락과 좌절, 허무와 청파동에서의 시간, 역사 같은 것에 대한 감지였을까.

시인에게 사랑은 과거의 것이다. 시인은 자신을 사랑을 잃은 죄인으로 묘사하기도, 떠난 이를 원망하거나 재회를 바라기도 하고 그냥 잊고 새 출발을 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괴로워하는 시인의 사랑의 운명은 시인의 운명과도 닮아있는 듯하다. 시인의 운명이란 무엇이냐. 모르겠다. 시를 쓸 수밖에 없지만 시로써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불만족의 괴로움, 그럼에도, 그래서 계속 써야만 하는 운명이라 해야 하나. 모르겠다. 연인과 청파동에서 청하와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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