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변증법이 뭔지 잘 모르겠다. 어떤 명제가 있고 그것을 반하는 또 다른 무언가를 제시하고서 나오는 일시적인 결론 같은 무엇을 또 덜어내고 또 덜어내며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변증법이라고 하면 얼추 맞는 것 같다. 최근 들어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을 좀 읽다 보니 '변증법'이라는 용어만큼은 여전히 낯설어도 어떤 식의 대화인지는 어렴풋이 그려진다. 반하기 위해 질문하고 그렇게 덜어진 것에 또 질문하고 이런 질문을 하고 저런 질문을 하며 덜어내고 또 덜어내는 끝이 없을 여러 과정들. 진리를 향한 여정. 플라톤의 대화편 중 상당수가 길 위의 어느 순간에서 시작해 아포리아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진리를 향한 길의 모양새와 그것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려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케스』는 용기에 대한 담론이다. 두려워도 맞서 싸우는 것이 용기인가, 그저 무식한 것 아닐까, 회피해가며 싸우는 것은 용기가 아닌가, 현명한 방식의 용기이지 않을까... 끝이 없을 대화다. 다른 덕에 대한 담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포리아로 끝나버리는 결론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동굴을 나오는 일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애써야 한다.
괜히『면도날』의 래리가 생각난다. 여전히 자신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나가고 있을 래리는 구도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다름 아니기도 하다.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