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여러 번 읽었는데도 읽을 때마다 어려운 책이다. 신과 인간과의 수직의 관계, 인간과 인간 간의 수평의 관계. 최초의 폭력, 개혁과 형식, 패배한 에리직톤과 승리한 모세가 이렇게 저렇게 얽혀있는 이 소설은 읽기가 도통 수월해지지 않는다. 일전에 읽었을 때는 하도 어려워서 툭툭 끊어서 읽느라 정교수의 수직의 관계의 회복이 전재되지 않은 수평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허무일 뿐이라는 말을 이 소설의 메시지라고 잘못 이해했었다. 소설은 가르치거나 주장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의문 혹은 부조리의 포착이자 그것의 공유, 교류하기 위한 수단이 소설이다. 참 허투루 책 읽었다. 그래서 자꾸만 전에 읽은 책을 찾게 된다.
어쨌거나 이번에 읽으면서 느낀 점은 『데미안』이 카인의 재해석이라면 이 소설은 에리직톤의 재해석 같다는 것이다. 『사랑이 한 일』의 작가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창세기를 이해해 보기 위한 노력이 다시 쓰기를 행하게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이 신의 나무를 도끼질한 에리직톤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라고 추리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
수직적 관계의 회복 없이는 수평적 관계 또한 허무한 일이라는 논리 그리고 최초의 폭력은 고착화된 권력구조를 합리화하는 승자의 역사이지 않을까라는 의심이 이 재해석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신학을 전공했지만 소설가로 살아가는 작가의 삶과 이 책은 어떤 관계일까.
얼마 전 창원에서 이승우 작가님의 북토크가 있었다고 한다. 전혀 몰랐다.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