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즘을 읽을 때는 안개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엇이든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의 사유의 기록이 그렇지 않겠냐만은, 아포리즘은 특유의 형식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바르게 읽고 있는 걸까,라는 걱정이 자꾸만 머무르게 하고 되돌아와 다시 읽게끔 한다.
그래도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삶의 의미라든지 목적이라든지 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좌우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살아가는 것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일관된 메시지의 변주들은 다른 책에서도 읽어왔기 때문이다. 『데미안』에서 읽었고 『캉탕』과 『이국에서』 그리고 『생의 이면』에서 읽었던. 엮은이의 “철학과 예술과 문학은 근원적으로 하나라는 관점을 지니고 있다.”라는 말이 내 독서의 무질서함에 대한 위로처럼 읽혔다면 너무 자위하는 걸까.
아포리즘은 호불호가 갈리는 형식인 것 같다. 알라딘의 리뷰와 출판학교 동기들과 스터디로 읽었던 『은둔기계』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 엮기로 했을 때의 결심 혹은 의도를 헤아려 보는 것도 독서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 하나의 리뷰가 참 아쉽다. 좋은 책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