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연성이 ‘있을 법함’이라면 핍진성은 ‘사실 같음’이라고 간단하지만 부족할지도 모를 나름의 정의를 복습 삼아 해 본다. 둘은 비슷한 개념이지만 분명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는 개연성만 있고 어떤 이야기는 핍진성만 있는 것도 있지 않을까.
초반에는 이 소설이 개연성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뜬금없는 기독교로의 귀의가 마치 유전되듯 주인공에게도 그렇게 되는 것과 주인공의 뜬금없는 실명을 그렇게 생각했다. 이 작품이 전기 소설 혹은 실화 소설이란 걸 모르고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이 오히려 허구보다 황당한 것 같다.
낮은 데로 임하고 함께 하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의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는 해 왔다. 다만 너무 멀게 느껴 왔다. 2,000년도 더 된 문서에 적힌 것이기도 하고 <침묵>같이 남의 나라 이야기에서 주로 읽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리고 좀 더 실천적이고 현실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지만 종교 소설보다는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노력에 대한 공동체 소설로서 읽어도 무리가 없다. 뭉클하고 담백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