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이라는 단어를 보고선 솔직히 서유쌍기가 생각났다. 사랑의 기한은 만년으로 하겠다는 대사가 뇌리에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일본 작가의 책이란 걸 알면서도 중국 영화가 떠오른 이유는 어릴 때 하도 봐서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듯하다. 틈만 나면 서유쌍기를 보곤 했다. 지금은 인간실격을 그렇게 찾아 읽는다. 시기별로 찾아오는 작품들이 있나 보다. 다음에 찾아오게 될 작품이 문득 궁금해진다.
책으로 묶어낸 것은 나이가 좀 들어서라지만 대부분 이십 대 초반에 쓴 작품이라고 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반영하는지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들이 가득하다. 작가 본인 삶의 반영이라 할 수 있는 죽음과 자살, 부유층에 대한 환멸, 자기혐오 등을 주제로 한 글들이 주를 이루지만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다. 몇 작품은 작가 스스로도 말했듯 웃음이 나올 정도로 유쾌한 것들도 있다.
그동안 단편을 싫어했는데 처음으로 좋게 읽었다. 짧은 이야기 여러 개를 읽음으로써 작가의 성장과정을 지켜본듯한 느낌이었다. 인간실격과 사양을 읽고 생긴 작가에 대한 편견(우울한 작품만 냈을 거 같다는)이 조금 가시기도 했다. 두고두고 읽힐 거라 자신한 이유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