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방송과 열차의 달리는 소리를 제외하면 새벽의 지하철은 늘 적막으로 가득하다. 과장을 좀 보태면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암묵적인 규칙인마냥 누군가 부산스러운 소리를 내면 시선이 집중되곤 한다.
그런 어느 날의 지하철이었다. 환승을 하고 막 열차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는데 여느 때완 다르게 도란도란한 말소리가 옆줄의 좌석에서 들려왔다. 중년의 세 남자들이었다. 주변의 다른 승객들은 대부분 부족한 잠을 채우려 눈을 감고 있거나 핸드폰을 보고는 있었지만 평소와는 이질적인 환경에 짜증이 난게 훤히 보였다. 신사들이셔서 목소리를 작게 조절하려고는 했지만 워낙 조용한 분위기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 새벽부터 뭐가 그렇게 할 말들이 많으셨는지 궁금했다. 안 궁금하다 해도 어차피 다 들렸으니 그냥 들어봤다. 셋은 오랜 친구였다. 연휴를 맞아 오래간만에 새벽 산행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새벽 산행뿐만 아니라 만남 자체가 오랜만인듯했다. 자녀들에 대한 얘기와 자신들의 과거 이야기들을 하며 끊임없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셨다. 서로에 대한 반가움이 넘쳐나는 분위기였다.
같은 역에 내리게 돼서 그들의 뒤를 걷게 됐다. 출구를 향하며 걷는 내내 그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환승하는 곳에 도달하고선 그들은 헤어졌다. 남자들 특유의 덤덤한 듯 무뚝뚝한 마무리였다. 눈빛에 가득 담긴 아쉬움은 감출 수 없었지만 말이다.
두 개의 몸에 하나의 영혼이 나눠 담긴 게 친구라고 누군가 말했다.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영혼이 제자리를 찾게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친구들 보기가 힘들어진다. 일이 바빠서, 공부를 해야 해서, 체력이 달려서, 여자친구 만나야 해서 등등. 갈수록 핑계라면 서운할 이유들이 생긴다.
그 아저씨들은 더할 것이다. 현실의 무게는 자비 없이 커지기만 하니까 말이다. 정상을 향해 영원히 돌을 굴리는 벌을 받고 있는 우리지 않은가. 갈수록 돌은 커지고 영혼은 지쳐간다.
현실의 무게만큼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은 소중해지고 반가움은 커진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시선도 신경 쓰지 못하고 순간에 집중하셨나 보다. 친구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만났을 땐 앞사람에게 집중하자. 나중에는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난다. 공공장소에서의 매너는 지키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