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때 은행 로비매니저를 한 곳에서 조금 오래 근무했다. 그 동네의 랜드마크 같은 건물의 1층에 있던 지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동네 분들이 많이 이용하시고 방문도 자주 하셨다. 제일 먼저 그리고 가까이서 손님들을 응대하다 보니 동네 분들의 얼굴을 많이 익혔었다.
그중 종종 오시는 할아버지와 손녀가 있었다. 아이는 다운증후군 환자였다. 나만 보면 내 손을 잡고는 해맑게 웃던 아이였다. 손을 잡고 지점 안을 몇 바퀴씩같이 걷곤 했다. 아이의 손은 따뜻함을 넘어 뜨거웠다. 손에 땀이 나 잠시 손을 뺄라치면 싫어하며 다시 손을 잡아달라 했었다. 몇 바퀴 좁은 산책이 끝나면 의자에 같이 앉아 할아버지의 순번을 기다리곤 했다.
보통 로비매니저는 서있거나 돌아다니며 다른 손님들을 응대해야 한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라치면 나를 찾는 손님들의 아우성에 객장이 난리가 난다. 전혀 과장이 아니다. 점심 먹고 들어오는데도 어디 갔었냐며 계속 기다렸다고 핀잔을 주는 경우가 잦았었다.
그런데도 그 아이와 손잡고 앉아있을 때면 다른 손님들이 건들지 못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봤는지는 모르겠다. 난 그저 앉아있으니 좋고 아이의 손이 참 따뜻하단 생각뿐이었다. 옆에 앉아있어 봤자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손을 잡고 옆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아이는 내게 계속 무어라 말을 하는듯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난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용무를 마치면 아이는 온기 가득한 손을 내게 흔들며 인사를 하고 밖을 향했다.
몇 년 만에 그 아이를 마주쳤다. 출근길의 지하철이었다. 할아버지와 역시 같이 있었다. 둘은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 좌석에 앉았다. 순간 아이의 뜨겁던 손의 온도가 생각났다. 잊고 있던, 그래서 세상 밖에 있던 따뜻함이었다. 이젠 멀리 가버린 온기였다. 얼어붙어있는 손을 주머니에 씁쓸히 찔러 넣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패를 예감하고서도 써야 하는 글이 있다잖은가. 아이 덕분에 느꼈던 편안함과 온기, 다른 손님들이 건들지 못했던 분위기를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 표현 못 할 무언가는 내가 잊고 있던 것이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