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수업 시간이나 드라마, 영화 등의 대중매체에서 스치듯 김삿갓이란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특이한 이름에 호기심이 잠시 인다. 그러나 잠시일 뿐이다. 호기심의 가치가 갈수록 낮아지는 시대이지 않은가. 그보단 문제를 더 맞추기 위해 시험에 자주 나오는 부분에 시간을 할애하거나 예술적 이해가 필요한 시나 시인들 대신 노력 없이도 즉각 자극을 얻는 대중매체를 즐기는 게 요즘의 보통이다.
이문열은 이 소외된 시인을 주목했다. 스스로 하늘 보기 부끄러워 삿갓을 쓰곤 시를 쓰기 위해 이곳 저것 돌아다니는 몰락한 양반의 자제라니. 이야기꾼에게 좋은 소재거리다. 역사적 자료가 별로 없으면 어떤가. 그는 역사가가 아닌 소설가다. 부족한 부분은 수도꼭지 물 틀듯 나오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메꾸면 된다. 평전을 쓰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보니 재미를 위해 생략이나 요약을 하는 부분에서 작가의 재량이자 재능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어린 혈기에 꼰대들의 틀에 박힌 소리라며 코웃음쳤지만 살아보니 맞는 말이더라. 성취를 얻고 성장하고 싶다면 포기하는 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시의 경지를 쫓는 그의 삶은 많은 현실을 버려야만 가능했다.
충과 효의 충돌에서 오는 갈등부터 경지에 오르려는 자의 방황,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현실의 차꼬들을 통과하는 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면도날이나 달과 6펜스 같은 비슷한 류의 해외 소설은 진작에 읽었으면서 국내의 이런 보물 같은 책은 이제야 읽은 게 아쉬웠다.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해왔는지와 앞으로 얼마나 더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