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출근 전에 카페에 가서 청포도 에이드를 시켰다. 무언가 마시고 싶지만 커피는 줄이기로 해서 고른 메뉴였다. 누가 봐도 초짜인 남자 알바생의 눈은 내 주문을 보고 크게 흔들렸다. 우왕좌왕하더니 매니저에게 레시피를 확인하고선 허둥지둥하고는 우당탕탕까지 하고서야 음료를 만들어냈다.
누구나 각자의 처음이 있는 것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음료를 받았다. 빨대를 집으려는데 그 빨대가 아니라 두꺼운 빨대를 쓰셔야 한다고 알바생은 말했다. 포도 알맹이 때문이란다. 매니저는 알바생을 막으며 내가 집은 빨대가 맞다고 했다. 죄송하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 알바생의 눈은 생기와 쑥스러움이 가득했다. 알바생과 나, 매니저는 짧은 웃음을 공유했다.
이 주 만에 카페에 온 오늘 같은 메뉴를 시켰다. 그새 그의 동작은 안정돼있었다. 전과 달리 어느 동작에서 도 낭비가 느껴지지 않았다. 빠르게 나온 음료를 받아들며 그와 눈이 마주쳤다. 초점 없고 검기만 한 눈동자였다. 전의 생기발랄함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기계적인 인사말을 뱉고선 다른 업무를 보러 갔고 나는 터덜터덜 가게를 나왔다.
그새 찌들어버린 그의 눈빛은 내게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동네에서 은행 로비매니저로 일할 때 구경 온 친구들마다 봤다던 나의 눈빛이었다. 그간 그가 겪었을 일들이 대충 짐작이 갔다. 몰이해, 몰상식, 불편, 불평, 불만 등의 단어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는 나날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피로. 늪을 걷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오만일 수도 있다. 전날 늦게까지 게임을 했을 수도 있고 친구들과 한바탕 술자리를 가졌을 수도 있다. 여자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고 운동을 해서 피곤해 보였을 수도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가 삶의 피로를 업은 게 아닌 하루 나절의 숙취를 업고 있는 것일 뿐이었으면 한다. 다른 이의 편안함을 바라는 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진심으로 그랬으면 한다.
다음 주에 또 한 번 청포도 에이드를 마시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