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동창에게 연락이 왔다. 다단계도 결혼도 아닌 순수한 연락이었다. 그러나 그닥 달갑게 반응할 수 없었다. 그 새끼는 여자친구가 생길 때마다 연락이 안 됐던 새끼였다. 그러다 사는 지역까지 달라져서 몸도 마음도 멀어져 버렸다. 연락하지 말고 각자 잘 살아가자 하고 옹졸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오후 근무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긴 좋은 습관 하나는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된 것이다. 문득 내가 첫사랑을 만나던 때를 돌이켜보게 됐다. 여자들의 첫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나 남자들은 첫사랑에게 미쳐버리는 경우가 은근 있다. 나도 그랬다. 일상이 망가져가는 것도 모르고는 영화의 주인공이 된 줄 착각하고 살았다. 세상에는 그녀와 나만이 주연이고 나머지는 모두 들러리로 여겼다. 친구는 그저 친구 1, 친구 2, 친구 3일뿐이다. 사랑을 방해하는 누군가는 악역이 된다.
사랑을 하더라도 내 원래의 모습을 지켜가며 해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 친구의 실수는 나의 실수와 다름 아니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던데 남의 허물도 더 크게 보이더라.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말을 그렇게 되뇌어왔는데도 실천은 여전히 낯설다.
내 허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늘 약속에 늦게 나오는 버릇이 있었다. 그 친구의 조언으로 고친 버릇이었다. 그럼에도 지각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멀어졌다. 보지 못하게 된 서운함과 더 나은 나를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돋아서 가슴을 할퀴어댔다.
먼저 용기를 낸 건 친구였으니 이제 내 차례였다. 저녁 즈음에 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취해서 뭐라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대충 누구나 그러는 때가 있지 않냐는 말로 운을 뗀 것 같다. 서로 짙고 짧은 사과를 주고받고선 언제 그랬냐는 듯 안부를 나누며 신나게 떠들어댔다.
당신이 내게 어떤 사람인지는 잘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습관이 들지 않으면 잘 안 되는 것 같다. 나의 서툰 실천을 받아준 친구와 조만간 밥 한번 먹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