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마다 친구 효군은 연락처를 차단하란 말을 한다. 참 말은 쉽다. 쉽게 나와서는 안될 말인 거 같은데 쉽게 나온다. 효군만이 아니라 많이들 그런다. 친구든 연인이든 갈등이 있을 때 만나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끝내는 게 기본이었던 시절은 어디 자료화면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화 통화도 아닌 메시지에 몇 글자를 담아 통보식으로 관계를 끝내는 게 요즘의 보통이다. 심지어는 잠수 이별이라는 끔찍한 말도 생겨나버렸다.
관계의 끝맺음을 그런 식으로 하는 통보자들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단호함이 있는 건지 중요하게 생각 안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전자는 나름의 근거가 있을 것이다. 씁쓸하지만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흉흉한 세상이잖은가. 그러나 그저 얼굴 보고 얘기하기 껄끄럽거나 본인 마음 편하고자 그렇게 한다면 문제가 있다. 관계에는 갈등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매 순간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길 바란다. 아주 작은 갈등도 용납할 수 없는, 마주할 생각, 용기가 없는 그들의 방식은 미숙하고 비열하고 이기적이다.
예상치 못한 벽에 가로막힌 상대방은 의문으로 머리가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잘못한 점을 돌이켜보며 끝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것이다. 그러나 답을 해줄 이는 없다. 쌓여가는 질문은 산더미처럼 불어만 가니 미칠 노릇이다. 쓰라린 말이지만 시간이 약이다. 명검은 대충 두들겨서는 나오지 않는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다져온 상대는 어느새 단단하고 강해져있을것이다. 그러나 갈등이 무서워 도망만 다녀온 도망자는 그 시절의 미숙함 그대로 머무를 뿐이다. 도망자는 계속 도망자로 살아간다.
사람은 사람들 곁에서 살 수밖에 없다.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데 사람 곁에 살지 않으려는 사람은 어디서 살려고 그렇게 도망만 치는 걸까. 한때는 좋다고 어울리던 사람이 미쳐가는 걸 볼 생각조차 없는 통보자들의 방식은 컴퓨터의 강제 종료 기능이 생각난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강제 종료를 자주 하면 컴퓨터에 안 좋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사실이라면 둘은 비슷해 보인다. 느닷없고 간편하지만 언젠가 찾아올 부작용이 있다는 점이 그렇다. 당장에야 편하겠지만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작 효군은 차단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어릴 때 내가 그랬기 때문인 것 같다. 줄줄이 넘겨야 하는 내 차단 목록을 보고 경악하던 효군의 표정이 생각난다. 별생각 없이 했을 말인데 괜히 생각에 잠기게 돼서 쓴 이 글은 사실 반성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