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 좀 찾고 가실게요~
요새 세상에는 온갖 ‘퇴사자’들의 글이 넘친다(물론 나도 그중 하나다).
직업도 출신도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쌓아 올린 퇴사의 경험을 공유하는 건 분명 반길 일이지만, 글을 읽은 후 어쩐지 박탈감이 가슴을 채울 때가 꽤 있었다.
창작력이 있는 예술가나 디자이너들, 선구적인 프로젝트를 차근히 기록해 온 프로 아카이빙러들, 평생 절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fluent 한 글로벌 탐험가들…, 혹은 내가 하기 어려운 선택을 용기 있게 해냈던 모두들.
그들이 진심으로 멋지다고 느꼈지만, 황새를 바라보는 뱁새의 시선처럼 지금의 내 상태에서는 절대 한 걸음에 따라잡을 수 없다는 간극을 느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어떤 날은 그런 박탈감이 모여 고통스러운 자괴감이 일기도 했었다.
내 지난날은 사회든, 부모든, 학교이든. 그저 세상이 나이대에 맞게 요구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 온 날이 대부분이었다. 무난하고, 평범하고, 아주 보통인 사람 중 하나.
보통의 삶을 사는 것도 물론 어렵다지만, 내 삶임에도 갈수록 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줄어들어가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뭐.'라는 말 뒤에서 삶의 결정권을 외부에 맡긴 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그런 생각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 어느 날, 이 굴레를 잠시 벗어나서 나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심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이전에 없었던 용기를 내,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회사 밖으로 나오는 선택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 밖에 나오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주로 경제적) 자립과 연결하여 생각한다.
그런데 자립의 전제 조건은 ‘자(自, 스스로 자)’의 존재이다. 단단한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나처럼 아직 뚜렷한 '나'를 표현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회사 밖에서의 ‘자립’을 고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먼저 나라는 인간이 은연중에 가져왔을 30~40년 간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자립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그러면 왜 벌써 퇴사를 했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자립할 준비가 되지 않은 퇴사는 지양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맞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늘 스스로의 한계를 짓고 사는 모습을 이제는 정말 끝내고 싶어서 무모한 ‘강수‘를 한 번 둬본 셈이다. 하이리스크는 하이리턴이라고 하니까. (하이리스크에서 끝나면 안 되는데)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바닥을 한 번 들여다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사회적 '충실함'을 통해 얻은 안온함을 끌어안고 살아온 내가, 당장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앞으로의 삶을 어디까지, 어떻게 고민하고 꾸려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아무것도 없으면 뭐라도 해내겠지’라는 '에라이!' 심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세상의 잣대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건강하게 '나'로서 자립할 수 있는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회사에 다시 돌아가게 되더라도(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이유와 의미를 명확히 알고 있는 내가 되기를.
그리고 세상에 나눌 ‘내 것’이 많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무언가 생각은 있지만 밖으로 표현할 만큼 정리하지 못해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던 날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쉽거나, 답답하거나, 가끔은 부끄러웠다.
이제부터 한 동안은 그 많은 아쉬움들을 한 겹씩 마주하고, 매 페이지마다 아쉬움이 남지 않을 만큼 내 얘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시간을 써볼 것이다.
앞으로 써 갈 시리즈의 글들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무턱대고 모아 오기만 한 '나'의 다락방을 정리하는 여정이자, 손에 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찐 퇴사자’의 인생에 대한 고민과 고군분투가 담긴 퇴사 기록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날은 막연함과 실패로 기록될 것이고, 그런 하루하루가 창피스러울 테지만
그 창피함들이 단단한 기반이 되어 이 삶의 원동력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