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 잡히기 딱 좋은 애
나는 내가 얼마 전까지 3년이 넘게 다닌 B회사를 참 좋아했다. 동료들이 정말 좋았고, 즐거움과 성취감을 얻을 수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니는 중에 안 좋은 사건들도 꽤나 많았지만 '참 재밌다'는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회사에 출근한 날이 많았다.
의미 있는 일을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성취해 가는 것이 내가 회사 생활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임을 B회사를 다니며 깨달았다.
그런데 올해 초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있었다. 직원의 20%를 하루 만에 해고했다. 구조조정은 상황에 따라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함에도, 과정이 너무 무례했다.(해고 당일, 발표를 하자마자 외부 클라이언트 미팅에 나가 있던 직원들에게 퇴사 면담을 해야 하니 빨리 들어오라고 닦달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는 대상이 아니었지만 몇 년이나 친하게 지냈던 동료, 내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던 동료들이 짐을 든 채 울면서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일을 하는 이유가 되는 큰 두 축, '사람'과 '의미 있는 성취' 중 한 개의 축이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회사를 믿을 수 없었고 애사심은 사라졌다.
그래도 작년부터 쌓아온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완수하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가 동료들의 업무를 편하게 만드는 데에, 그리고 고객들의 경험을 개선하고 고도화하는 데에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완료되기 직전, '전 직원이 매출 발생을 위한 영업을 해야 한다'는 발표에 따라 백오피스 기능 대부분을 통폐합할 것이라는 내용이 공지됐다. 그리고 동시에 그동안 백오피스에서 지원이나 기획 업무를 하던 직원들은 임원진에게서 '아무 결과물도 못 냈다'는 피드백만을 받게 되었다.
프로젝트는 허망하게 중단되었고, 동시에 고객과 동료를 위해 일한다는 목표의식도 사라졌다. 과정이라도 남았다면 좋았으련만. 임원진의 몇 마디로 작년부터 쌓아온 회사에서의 '과정'도 종적을 감춘 셈이다.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아무 의미도 없는 시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생활비를 생각하면 더 다니는 것이 맞았지만, '돈'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나의 자긍심, 동료와의 관계, 신뢰 같은 것들이 하나도.
20대 중반부터 시작한 회사 생활에서, 한 번도 주인의식을 갖지 않아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역할이든 나와 내 동료들이 몸 담고 있는 '우리 팀'이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회사에서 성취와 성장을 만들어가는 것이 행복했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가져왔던 그 주인의식이 실은 나 혼자 일방적으로 가져온 짝사랑 같은 마음이라는 깨달았다. 솔직히 이전 회사들에서도 어렴풋이 느껴왔겠으나, B회사에서 겪은 일련의 과정으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회사라는 조직은 나에 대해 그다지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 '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적당히' 회사를 다니라고 말하는 걸까.
'일'이라는 것이 단순히 삶의 현상유지를 위한 수단이 되면, 하루의 1/3이라는 긴 시간이 창조해 낼 수 있는 삶의 가능성도 그만큼 축소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일'은 언제나 적극적으로 임해서 성취를 만들어가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열의를 단물만 쏙 빼먹고 버리려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뼈저리게 깨우치는 요즘이다.
회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이든 열심히 수행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단단한 나의 역할이 보장되는 곳에서 그 역할을 기반으로 회사의 성장에까지 도움이 되도록 일하는 것이 필요했다.
회사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라는 말은 틀렸다.
단어의 위치를 바꾸어 나의 성장이 회사의 성장이라고 말해야만 맞다.
나 자신에 대한 주인의식을 먼저 고민했어야 했다.
어쩌면 나는 권위자에게 기대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열정적으로 충성하고 착하게 굴면 회사가 나를 끝까지. 좋은 곳을 향해 데려갈 것이라는 나이브한 믿음을
'여즉까지' 가진 순종적인 사람이었던 것일지도.
앞으로 '나'에 대해서 계속 더 공부해 나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