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근황을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감은 없고, 그냥 냅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문득 내 예전 생각들을 읽어보았다.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참, 아등바등 살고 있었구나, 였다. 내 나름대로 괜찮아지려는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의 근황은 이렇다.
현재의 나는 고민이 많으면서 고민이 없는 상태이다. 여러가지 고민들을 머리 곳곳에 숨겨놓았다. 나이가 들면서 나잇값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 모아놓은 돈이 별로 없음과 나의 소비패턴에 대한 고민, 앞으로 나의 진로를 어떻게 결정해야 하나 하는 고민, 여전히 정리되지 않는 내 10평 남짓한 집에 대한 고민 등 여러 고민들을 머릿속에 욱여 넣고 산다. 가끔 불쑥불쑥 꺼내서 미리 걱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하기 싫어 다시 욱여 넣기도 한다. 이런 고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기에 그냥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내 인생을 설계했으나 설계대로 가지 않았고, 인생을 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란 확신은 점차 사라져간다. 더 많은 것을 알아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이젠 정말 내가 괜찮은 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렇게 계획 없이, 생각없이 사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고, 가끔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이 나이 됐으면 뭐라도 하나 이뤄놓은 게 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책임지는 것 하나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 언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정답이다.’ 라고 했으면서 주변 결혼 소식에 ‘나도 나잇값을 해야 하나’ 하는 걱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런 나도 어딘가에서는 정답을 알고 사는 것처럼 보이리라. 겉으로는 아무 걱정 없어 보일 것이다. 그럼 다른 누군가도 정답을 알고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 나도 그 누군가를 보면서 저 사람은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거라고 멋대로 판단할 수도 있겠다.
이전 인생의 목표는 저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저 높은 곳이 어디냐고? 나도 모른다. 그저 사람들이 봤을 때 ‘저 정도면 쟤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되겠다.’ 하는 정도로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들어보면 지금도 주변 사람들이 나는 자유롭게 사는 것 같아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정작 나는 내가 자유롭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목표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게 나의 인생을 남의 시선에 맡기면 겪는 딜레마가 아닐까 싶다. 높은 곳만 바라봤더니 이제 슬슬 목이 아프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높은 곳으로 가는 것도 관두기로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생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도 차후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이전에는 이 땐 이렇게 하고 이 때까지 여기에 있다가 이 때 서울로 올라가는 나름의 계획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건 아니고 지금도 이렇게 사는 게 맞는건가 싶으면서도 계획은 세우지 못했다. 그냥 당분간 아무 계획 없이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 자신도 많이 지친 게 아닐까.
나는 확실히 유연한 성격이 못 된다. 나도 차질이 생기면 파도타기 하듯 차질을 즐기고 싶지만, 차질이 생길 때마다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는 성격이라 그게 잘 안된다. 그래도 인생에 차질이 생기면서 얻은 것들이 있다. 인생을 계획하면서 살지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고, 내가 얻고 싶은 걸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대신 다른 걸 얻을 수도 있다. 어쩌다 보니 나는 다른 걸 얻었고 생각보다 그게 더 귀중했다.
그래서 나의 근황은 잘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인생 계획대로 살고 있진 않고 아직도 이렇게 사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정답보다는 오답에 가까운 인생을 살고 있지만 이런 인생이 나쁘진 않다. 감히 장담하건대, 인생 최초로 계획 없이 살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살고 있냐, 일단 살고 있다.